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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은기사] “간송미술관 45년 지킨 건 우리것에 대한 자존심 때문”

Moam Collection 2011. 11. 26. 21:28

 

간송미술관 최완수 선생님, 제가 어릴 적 부터 뵈어 온 분입니다. 정말 많은 연구와 공부를 하시는 분으로 강우방 선생님과 더불어 한국미술사계에 없어서는 안될 분입니다. 물론 연구성과들에 좀 잘못된 부분들도 있지많요. 이런 점들은 우리 모두 인간이기에 자연스런 부분이구요.

 

어쨌던 참 공감가는 인터뷰이고 말씀이네요. 강우방 선생님과 최완수 선생님과 같은 분들께서 우리 공공 문화기관들의 수장이 되신다면 정말 우리 문화예술계가 많이 나아질거라 생각되는데 기사에서와 같이 이런 분들께서는 자리들에 관심이 없으시니... 말단 후학으로서 참 많이 아쉽습니다.

 

by 人靜香透

ⓒ 모암문고 茅岩文庫 The Moam Collection www.moamcollection.org

 

 

원문보기: http://articl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6518247 

 

 

 

[중앙일보 권근영.권혁재] “저희는 잘 지키는 사람들입니다. 늘 바꾸려 들면 늘 버려야 하는데,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이제 문화유산을 지키고 있는 거죠.” 평생 독신으로, 학사 출신으로 석·박사·교수 제자들을 숱하게 길러낸 간송미술관 한국민족미술연구소 최완수 연구실장의 말이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26일 오전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 한국민족미술연구소. 30일 끝나는 '풍속인물화대전(風俗人物畵大展)'을 보기 위해 개관 30분 전부터 긴 줄이 늘어섰다. 겸재(謙齋) 정선, 단원(檀園) 김홍도, 혜원(蕙園) 신윤복 등을 만날 생각에 상기된 표정이다. 관람객 의 성화에 미술관은 예정보다 일찍 개관했다. 이곳 2층에서 최완수(69) 연구실장을 만났다. 1971년부터 40년째 여는 우리 미술 명품전의 주역이다. 그는 이달 초 우리 나이로 칠순을 맞았다. 간송미술관을 지킨 지는 45년째. 인터뷰 중 그가 가장 많이 사용한 단어는 '자존심'과 '자긍심'이었다.

-1∼2시간씩 줄 서는 것도 마다 않고 사람들이 몰리는 이유가 뭘까요.

 “어디선 '혜원 신드롬'이라고도 합니다. 그것만은 아닌 것 같고요. 문화적 자긍심을 만족하고 가는 것 같아요. 전시장을 지나다 아들을 데려온 아버지가 '간송이야말로 우리 문화적 자존심이니 여긴 반드시 꼭 와봐야 한다'고 당부하는 걸 들었어요. 사실 지금 어디를 가도 '우리'는 없잖아요. 간송미술관에 오면 우리를 느끼고 가는 거죠.”

 -미술관 입장에서는 해마다 관람객이 느는 것이, 운영방식을 재고해야 할 지경에 온 것도 같습니다.

 “(한숨 쉬며)일신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하고, 조금 합리적인 생각을 해나가야 할 때죠. 다만 여기 저 많은 관람객들은 이 분위기가 좋아서 오는 거에요. 고향집에 온 느낌, 옛날로 돌아간 느낌. 우리가 그 동안 얼마나 많이 변했어요. 그런데 여기는 50년을 안 변했거든요.”

 -왜 입장료를 안 받으시나요.

 “입장료를 내는 순간 관객들이 권리를 주장할 수 있잖아요. 우리가 그걸 충족시켜 드릴 형편도 못 되고. 간송이 또 입장료 받으려고 이렇게 했을 거라는 생각은 안 들어요. 일장일단이 있겠죠. 불편해도 불평 없는 것, 많이들 와 주시는 것도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무료라는 점도 그 하나일 겁니다.”

 이른 점심을 하러 나섰다. 줄은 더욱 길어져 성북파출소 지나 400m 넘게 이어졌다. 한결같은 흰 한복 차림에 잔잔한 미소를 띄운 그는 이제 하나의 '상징'이었다. 줄 서 있는 이들이 저마다 인사했다. “아무리 친분으로 줄에서 빼 달라고들 하셔도 우린 못해. 이게 약속이고, 신뢰니 질서도 지켜지는 거고요.” 최 실장이 미안한지 설명했다. “2주는 너무 짧아요. 좀더 자주 열어주실 수는 없나요”라고 외치는 이도 있었다.

 -더 자주 열어달라고도 하는데요.

 “여긴 연구소에 부속된 박물관입니다. 연구가 주목적이며, 연구 결과를 대중에게 검증 받자는 게 전시의 목적이에요. 전시 시기, 기간 등은 여기를 후원하시던 당시 최고의 학자들이 보존까지 고려해 결정한 일입니다. 40년간 그걸 철저히 지켜왔습니다.”

 전시엔 25일까지 4만5000여 명이 다녀갔다. 뿐만 아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조선시대 초상화의 비밀'전엔 2만1000여 명이, 삼성미술관 리움의 '조선화원대전'엔 7000여 명이 들러 안복(眼福)을 누렸다. 드물게 열리는 대규모 고미술 전시 세 가지가 겹친 가을이다.

 -고미술에 대한 목마름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죠. 그걸 제대로 이끌지 못하고 있어요. 교육과정에서 고미술에 친숙하게 접근할 기회를 안 줬어요. 주로 서양미술 위주로 가르치고, 더구나 한문을 안 배우니. 우리 손으로 해 놓고 우리가 문맹이 되는 게죠.”

 -이런 열풍이 미술시장으로 이어지지는 못합니다. 우리 고미술품은 희소성에도 중국 것의 10분의 1 가격도 안 됩니다.

  "중국인은 이제 서서히 자존심을 찾아가고 있죠. 자존심을 갖고 자기 문화의 가치 상승을 기도하니 상승되는 거죠. 우리는 스스로가 우리 문화재를 천시하고 있으니. 조선 영·정조 진경(眞景)시대 그 찬란한 그림이 그려진 것은 우리가 세계의 중심이라는 분명한 자부심이 있어서입니다. 사람들도 자신의 안목으로 가치 평가를 할 수 없으면 전문가의 판단을 신뢰하기라도 해야 하는데, 그럴 수 없는 형편이니 가격 형성이 안 되겠죠.”

 신씨는 1961년 서울대 사학과에 입학했다,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사를 거쳐 66년부터 보화각(간송미술관의 전신)에 들어왔다. 보화각은 그해 간송미술관으로 이름을 바꿨고, 한국민족미술연구소를 개설했다. 71년부터 연 2회 무료 전시를 열었다.

 -칠순이십니다. 기분이 어떠세요.

 “공자의 제자가 '선생님은 어떤 분이시냐고 누가 묻더라' 하자 공자가 '부지노지 장지운이(不知老之 將至云爾)라 하라' 했답니다. 배움을 좋아해 늙는 것도 모르고 산다는 얘기죠.”

 -하루를 어떻게 보내시나요.

 “옛 선비들은 술시(戌時)에 자고 인시(寅時)에 일어나거든요. 오후 9∼10시 사이에 자고, 오전 3∼5시쯤 일어나요. 요즘은 스님네들만 지키는 일이죠. 책 읽고, 글 쓰고, 사적 답사하고, 그러고 지냅니다.”

 -지난 정부에서 정찬용 청와대 인사수석이 자리 제의했지만 “나에겐 시간이 많지 않으니 내가 해야 할 일을 하겠다”고 거절하셨다는 후일담을 들었습니다.

 “내가 그 소문도 일체 내지 말라고 했는데. 어떤 자리란 건 누가 해도 하지만 이 일만은 나 아니면 못할 것 같아서요. '나 아니면 안 된다'는 말은 자칫하면 오해하기 쉬운데 공부가 그렇다는 얘기죠. 평생 목적을 공부에 뒀으니 하던 공부 마무리 짓는 일은 나 아니면 안 되니까. 추사(秋史) 김정희도, 현재(玄齋) 심사정 연구도 마무리 져야 하고. 젊은 시절 해 놓은 왕릉 조사도 정리하고 갈 수 있을지….”

 -칠십 평생, 45년간 무엇 때문에 이곳을 지키셨나요.

 “(그는 이 질문에 잠시 숨을 훅~ 들이쉬었다)자존심이죠. 문화적 자존심. 간송을 못 지키면 우리가 문화적 자존심을 포기하는 일이라고. 그리고 자긍심. 우리 문화에 대한 자긍심을 미술사 연구를 통해 분명하게 살려내야겠다는 생각에서.”

글=권근영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보화각(<8446>華閣)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미술관인 간송미술관의 옛 이름. 일제강점기 10만석 재산을 털어 우리 문화재를 모은 간송(澗松) 전형필(1906∼62)이 1938년 설립했다. 위창(葦滄) 오세창(1864∼1953)이 '보배를 두는 집'이라 해 '보화각'이라 이름 짓고 현판을 썼다. 서양식 2층 건물은 서울 종로통에 화신백화점을 설계했던 박길룡(1898∼1943) 작품이다. 간송의 3남 전영우(71)씨가 미술관 부설 한국민족미술연구소장을 맡고 있다.

▶권근영 기자의 블로그 http://blog.joinsmsn.com/altx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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