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장

자하 신위

Moam Collection 2010. 1. 19. 02:48

 

자하 시비, 서울대학교

 

자하紫霞 신위申緯

조선 후기의 문신·서예가·화가.

19세기 전반에 시(詩)·서(書)·화(畵)의 3절(三絶)로 유명했던 문인이며, 시에 있어서는 김택영이 조선 제일의 대가라고 칭할 만큼 당대를 대표하는 시인 중의 한 사람이었다. 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한수(漢叟), 호는 자하(紫霞). 1799년(정조 23)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나갔는데, 10여 년 간 한직(閑職)에 머물거나 파직·복직을 되풀이하는 등 기복이 많았다. 그후 이조참판·병조참판을 지냈다. 당시 국내외의 저명한 예술가·학자와 폭넓은 교유를 했다. 1812년(순조 12) 중국에 가서 옹방강(翁方綱)을 비롯한 그곳의 학자들을 만나고 돌아온 이후 그 전에 쓴 자신의 시들을 다 태워버렸다. 시에 있어서는 우리나라 시인과 그 작품을 7언절구의 형식으로 논평한 일종의 논시시(論詩詩) 〈동인논시절구 東人論詩絶句〉, 시조를 한역한 〈소악부 小樂府〉, 그리고 판소리 연행을 한시화한 〈관극절구 觀劇絶句〉 등의 작품이 유명하다. 이외에도 중국 신운설(神韻說)의 대표적인 인물인 왕사정(王士禎)의 〈추류시 秋柳詩〉를 본떠 지은 〈후추류시 後秋柳詩〉, 신분제도·화폐개혁 등 현실문제를 다룬 〈잡서 雜書〉 등이 있다. 그의 시는 전(前)시대에 활약했던 이서구(李書九) 등의 시풍을 계승하면서 한말 4대가인 강위·황현·이건창·김택영 등에게 많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그림에 있어서는 묵죽(墨竹)에 특히 능하여 이정·유덕장과 함께 조선시대 3대 묵죽화가로 꼽힌다. 그의 대나무 그림은 강세황에게 큰 영향을 받았는데, 단아한 기품과 우아한 아름다움이 특징이다. 그는 남종화의 기법을 이어받아 추사파 화가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쳤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방대도 訪戴圖〉·〈묵죽도 墨竹圖〉가 있다. 그의 화풍은 아들 명준(命準)과 명연(命衍)에게 이어졌다. 그의 서풍(書風)은 기름지고 윤기 있는 청나라의 새로운 풍조를 받아들여 한국의 습기(習氣)와 속기(俗氣)에서 벗어났다고 평해진다. 문집으로 시 4,000여 수를 수록한 〈경수당집 警修堂集〉(16책 85권)이 전한다. 당시(唐詩) 가운데 화의(畵意)가 풍부한 작품만을 뽑아 편집한 〈당시화의 唐詩畵意〉가 있으며, 그밖에 김택영이 중국에서 간행한 〈신자하시집 申紫霞詩集〉(2책)이 있다.

(브리테니커)

 

자하연

 

자하연

 

자하는 후배인 추사() 김정희(·1786∼1856)와 함께 조선 후기 문학·예술사의 양대 거봉으로 평가된다.

한시 4천여수를 남긴 자하는 추사 등 당대 서예가들에게 큰 영향을 줬으며 산수화와 함께 묵죽화를 잘 그리는 것으로도 명성이 높아 이정()ㆍ유덕장()과함께 조선시대 3대 묵죽화가로도 꼽힌다.

중국 당대의 문사 옹방강()이 자하의 시를 보고 "소매 속에 맑은 구름처럼 높은 기운이 있어 문자향()에 이 사람도 특별히 속해야 한다"고 평가할 정도로 중국에서도 명성을 떨치기도 했다.

자하는 서울 장흥방(·현재 종로구 적선동과 내자동 일대)에서 태어났으나 어릴 때부터 경기도 시흥군 자하동(·현재 서울대 관악캠퍼스 부지)에 있던 향제(·고향에 있는 집)에서 기거할 때가 많았고 사후에도 이 곳에 묻혔다.

자하()라는 그의 아호 역시 자신이 학문과 예술을 연마하던 고향 집의 지명에서 따 온 것이다.(동아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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