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ks of art/Works in Korea

부산 동삼동 유물 (패면 등)

Moam Collection 2010. 3. 21. 15:48

부산 동삼동 유물 (패면 등)

 

 

 

동삼동패총은 우리 나라 신석기시대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유적으로, 또 신석기문화를 연구하는데 표식적인 유적이다. 위치는 영도구 동삼동 750-1번지일원이고, 태종대와 해양대로 들어가는 양 도로의 동남쪽 사이에 위치하며, 조도와 마주보고 있다.


패총의 중심부가 밭으로 경작되고 있는데, 도로보다는 3~4m정도 낮고, 현재의 해수면보다는 3m정도 높다. 이 패총은 한반도의 최남단에 위치하고 있으며, 남해안 일대에서는 가장 규모가 크다. 또한 신석기시대 전 기간의 유물이 출토되어 우리 나라 신석기 문화를 규명하는데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 유적의 이러한 중요성 때문에 일찍부터 국내외 학자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어왔다.

동삼동패총은 해방전인 1929년에 동래고등보통학교(현 동래고등학교)교사였던 일본인 오이가와씨가 처음으로 발견 조사한 이래 1963~64년에는 미국 위스콘대학의 모어 및 샘플에 의한 부분적인 발굴과, 1969년부터 1971년까지 3회에 걸쳐 국립중앙박물관에 의해 정식 발굴이 실시되었다. 특히 국립박물관의 조사 결과는 그 동안 불투명했던 한반도 남부 지역의 신석기시대문화의 성격과 변천과정을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하였고, 이후 동삼동패총은 그 중요성으로 인해 1979년에 사적 제 266호로 지정되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동삼동패총에 대한 정식발굴보고서가 간행되지 않고, 또 부분적으로 발표된 내용 중 특히 유적의 성격이나 편년, 층위, 출토유물 등에 일관성이 없어 유적의 중요성에 비해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 부산시에서는 동삼동패총의 주변 정화사업을 추진함에 따라 1999년 부산시립박물관에서 정화지역내 패총의 잔존상태 및 범위 등을 파악하기 위한 정밀 수습발굴조사를 실시하였다. 신석기시대는 후빙기의 새로운 자연환경 속에서 인류가 처음으로 원시농경과 목축에 의한 식량 생산을 하게 되고, 고기잡이나 사냥을 위주로 하는 채집 경제생활을 하게되어 그 배경으로 인류문화가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된 시기를 말한다.


이 기간에 부산지역에서는 영도 동삼동에 가장 먼저 사람이 살게 되었고, 점차 해안선을 따라 낙동강 하류쪽으로 퍼져 나갔을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동삼동패총은 각층에서 출토된 유물의 성격이나 특징으로 보아 신석기시대 조기, 전기, 중기, 후기, 말기의 5개 문화층으로 나누어진다. 일반적으로 패총이 분포하는 위치에 따라 성격이 구분되는데, 그 경우 출토유물 내용에 있어서도 차이가 나타나고 있다.
외해에 형성된 패총의 경우 먼바다에 사는 어패류나 바다동물들이 주 포획물이 되며, 이와 관련되는 도구나 유물들로 구성된 패총을 '외향성 패총'이라 하는데 동삼동패총은 부산지역의 대표적 외향성 패총이다.
전기 단계까지는 외양성 어류인 대구, 방어, 참돔, 다랑어, 상어류가 출토되고, 중기 이후단계에서는 회유성 어류인 숭어의 비율이 늘어난다는 분석결과가 있다. 바다짐승의 종류는 모두 6종으로 고래, 돌고래, 강치, 바다사자 등의 바다동물의 뼈가 출토되었다. 육지 짐승은 사슴과 멧돼지가 중심을 이루고 있는데, 최근 시립박물관에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호랑이 뼈와 탄화된 조도 검출되었는데, 원시적이나마 농경도 실시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한다.


출토된 유물로는 빗살무늬토기, 석기, 골각기, 패기 등이 있고, 유구로는 화덕자리와 적석시설이 확인되었는데, 유구는 유아용 옹관으로 추정되는 분묘 1기와 수혈주거지 3기정도이다.
이 옹관묘는 패총의 최하위층에서 발견되었고, 지층분석결과 동아시아의 최고의 것으로 알려졌던 BC3000년께 일본의 옹관묘보다 3000년이 빠르며, 선사시대의 생활상과 묘제연구와 사후세계에 대한 의식파악의 귀중한 단서가 된다. 옹관의 형태도 양쪽에 손잡이가 달렸던 흔적이 있으며, 이것은 우리 나라만의 독특한 형태로 밝혀졌다.
석기로는 땐석기와 간석기도 많이 나왔고, 늦은 시기의 돌도끼, 날부분만 마연한 도끼, 화살촉, 괭이, 갈돌, 갈판, 원추형석기, 원반형석기, 흑요석연판, 석도, 흑요석계 석촉 등 농사짓는데 쓰인 연장이 출토되었으며 골각기는 용도를 달리하는 여러 종류가 검출되었는데, 재질은 대부분 사슴뼈나 고래뼈를 가공한 것으로 종류는 결합식낚시바늘, 뼈바늘, 작살 등이 출토되었다.
토기로는 즐문문화 조기의 융기문토기, 조흔문토기부터 전기의 압인문토기, 지두문토기, 중기의 빗살무늬토기, 후기의 이중구연토기 등 다양한 형태의 즐문토기가 다량 출토되었다.


토기는 음식물의 조리 및 저장수단으로 신석기 문화의 가장 중요한 특징의 하나이다.
그리고 장신구는 패천(조개팔찌)을 비롯하여 이식, 뒤꽂이 등이 출토되었다. 특히 조개팔찌는 편을 포함하여 2,000여 점이 출토되었는데, 그 중에 미제품, 반제품, 완제품등 다양한 자료가 검출되어 제작과정뿐 아니라 동삼동패총의 성격을 규명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토우는 수점에 지나지 않고 대부분 편들로 검출되어 전체 형상은 자세하지 않으나, 잔존 부분의 특징으로 보아 인형 토우와 동물형 토우로 생각되는 토우의 편들이 출토되었고, 특히, 머리 부분만 출토된 곰모양 토우는 한반도에서 처음으로 확인된 것으로 주목되는 자료이다.
조개류로는 이곳의 입지조건 때문에 암초에 붙어사는 홍합, 굴, 전복, 소라, 성게, 백합 등 무려 40여종이 출토되었다.
이밖에 일본의 승문토기와 일본산 흑요석제 석기가 출토되었으며 이 유물은 바다를 통한 교역 내지는 문화교류활동 등을 알려주는 좋은 증거가 되고 있다. 또한 우리 나라 빗살무늬의 영향을 받은 일본계 소비타토기와 아다카토기 파편이 다량 출토된 것으로 미루어 신석기시대 초기부터 한반도 남부지역과 일본 규슈지역간의 활발한 교류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끝으로, 동삼동패총은 다량으로 출토된 각종 유물의 특징과 유적의 규모로 보아 동남해안의 중심집단내지 거점집단의 성격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남해안 지방의 신석기 문화 내용과 일본과의 상호 교류관계까지도 알려주는 중요한 유적이며, 국내에서 처음으로 확인된 한반도 최고(最古)의 옹관묘는 신석기시대의 묘제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참조: http://www.heritagebusan.com/htg/htg24.htm]

우리의 경우 구석기 유물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흙으로 빚어 구운 토우 형태의 신석기 시대 비너스가 출토된 바 있다.

신석기시대의 예술은 신앙적인 형태의 주술품들과 장신구들이 주종을 이룬다. 거친 대자연과 대항하면서 어로 및 수렵 생활을 영위한 신석기인들은 진흙·조개·뼈·뿔·옥·돌 등의 재질을 이용해 자연에 대한 외경심을 표현하고, 생산물의 풍요한 수확을 기원했다.

최근에도 울산 황성동 세죽마을에서 사람과 물개를 형상화한 토우 2점이 출토된 것을 비롯, 남해안·동해안 등 우리나라 해안 전역의 패총에서 다양한 형상 및 재질의 예술적 조각품들이 발굴되고 있다.

 

신앙적인 상징물로 간주되는 멧돼지·물개·개·뱀·새·망아지 등의 동물 토우와 여인상 등 사람 형상의 인물 토우는 통영 욕지도, 양양 오산리, 부산 동삼동, 해주 용당포, 함북 서포항 등에서 수점씩 발견된다. 흥미로운 것은 일본과의 비교다. 일본의 경우 신석기시대(빗살무늬토기)로 분류되는 죠오몽(繩文)시대의 경우 사람 및 동물 토우가 우리와 달리 대량으로 발굴된다는 점이다. 도쿄 부근 세카도(釋迦堂) 유적에서는 신석기시대 토우가 수만점이 출토된 바 있다. 이는 지진, 화산, 해일 등 자연에 의한 피해가 극심해 주술적인 상징물을 통해 이를 극복하려던 일본 신석기시대 사람들의 생활상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토우 이외에는 조개나 동물의 뼈를 이용한 조잡한 미술품이나 장신구들이 많이 출토되고 있다. 특히 부산 동삼동 출토 사람얼굴 패면(貝面)은 대표적인 미술품으로 자주 언급되고 있지만 여러가지 견해가 엇갈리고 있다. 우선 주술적인 미술품이다, 아니다의 논란이다. 주술품으로 보는 견해는 “일본 규슈에서도 발견되는 것으로 남성을 상징하는 얼굴을 표현한 것”이라고 말한다. 반면 생활미술품으로 보는 쪽은 “조개에 두눈과 입을 표시한 어린아이의 얼굴로 그저 당시의 장난감에 불과하다”고 보고 있다. 현재는 유사한 자료가 별로 없어 후자쪽에 더 무게가 실리고 있다. 아예 극단적인 견해로는 불가사리가 조갯살을 파먹다 남은 자국이라고까지 말하기도 한다.

뼈와 뿔을 이용한 팔찌·목걸이 등의 골각기 장신구는 패총 전역에서 다량으로 출토되고 있다. 특히 통영 연대도 조개무지 무덤에서는 발찌가 처음으로 확인돼 학계의 관심을 끌었다. 발견된 인골은 돌고래 이빨로 만든 발찌를 찬 채로 누워 있었다.

출토 유물들을 종합하면 신석기인들의 예술은 자연에 대한 법칙을 이해하고 자연을 극복하려는 염원이 담긴 신앙적 예술로 분류할 수 있다.

[참조: http://home.freechal.com/coja2002/]

 

모암문고 茅岩文庫 The Moam Collection www.moamcollection.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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