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원아회첩

서원아회기西園雅會記_이춘제

Moam Collection 2010. 1. 7. 00:56

서원아회기西園雅會記

  

 겸재 정선, 「옥동척강玉洞陟崗」, 견본담채, 33.8 x 33.5cm, 개인소장

 

서원아회: 이중희李仲熙(이춘제李春躋), 조치회趙稚晦(조현명趙顯命), 송원직直(송익보), 서국보徐國寶(서종벽徐宗璧), 심시서沈時瑞(심성진沈星鎭), 정선鄭歚, 이병연李秉淵

 

"휴관이래 병과 게으름이 상성하여 집 뒤 소원(서원소정)을 들여다 보지 못한지 오래되었는데, 송원직, 서국보가 심시서와 약속하고 두 분(령: 겸재 정선, 사천 이병연)을 받들어 모시고 작은 모임(소회)을 도모했는데, 귀록 조대감이 소식을 듣고 이르렀다. 그때 소나기가 내려 물이 넘쳐 흘러, 개인 후에 올라 서원(소정)에 임하여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좆으며 또 연몌(連袂. 가지런히 서서 함께 가거나 옴)하며 시선(울짱, 목책 사립문)을  나와 옥류천석에서 배회하는데 귀록이 홀연히 지팡이를 날리며 짚신을 신고 비탈을 타며 산마루를 오른다. 걸음이 빠른것이 소장小壯에 덜하지 않아 제공이 뒤따라 오르는데 땀이 나고 숨차지 않음이 없었는데 잠깐 사이에 산등성이를 넘고 골짜기를 지날 수 있어서 (청)풍계의 (원)심암과 (태)고정이 홀연 눈 아래 있다. 이것은 당초 시경에 이르기를 "마침내 절험을 넘었으니 이것은 일찌기 뜻한 바가 아니다."라 한 것과 같다. 마침내(급기) 숲을 뚫고 내려가 시내에 임하여 앉으니 곧 한 줄기 걸린 폭포가 바위 사이로 졸졸 흐른다. 갓끈을 빨고 갓을 씻고 답답한 가슴을 내어 씻어 땀나고 숨찬 것을 다 털어내고 나서 모두 이르기를, "풍원(조현명)이 아니었으면 어찌 이렇게 힘쓸 수 있었겠는가? 오늘 계곡놀이는 실로 평생 으뜸일 것이다."라 하였다. 정자에서 소요하는 것으로 마침내 저녁이 되어도 돌아갈 줄 모르다가 파하기에 임해서 귀록이 입으로 시 한 수를 읊고 제공에게 잇대어 화답하라 하고, 겸재 화필을 청하여 장소와 모임을 그려달라 하니 그대로 시화첩(서원아회첩)을 만들어 자손이 수장하게 하려 함이다. 심히 기이한 일이거늘 어찌 기록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기록이 없을 수 있겠는가?) 나를 돌아보건데, 어려서부터 '시학'을 좋아하지 않았고 나이 들어서는 또 눈이 높고 손이 낮은 증세(병)가 있어 무룻 시를 짓는데 마음을 두지 않아 친구와 만나고 헤어질 때 시를 주고받는 일에 일절 길을 연 적이 없다. 그런고로 문득 이것으로써 사양하였더니 귀록이 또 '시령'을 어긴 것을 책망한다. 부득이 파계하여 책망을 막기는 하나 참으로 이는 '육담(육두문자)시'라 할 수 있을 뿐이다.

기미(1739)년 늦여름 서원주인"

 

소원의 가회(기쁘고 즐거운 모임) 우연히 이루어지니

지팡이 들고 짚신 신고 비 걷힌 저녁 산을 소요하네.

선객(신선)이 번거로움 사양하니 마음 이미 고요하고

구름 산 승경 찿으니 다리 가볍네.

멀리 올라 오늘 저녁 피곤하다 말하지 말게

자랑하며 와서 논 것(유람한 것) 이 생애 제일(으뜸)

파함에 임해 정녕 지체하며 뒷 기약 두니

장군의 풍치와 사천 노장의 맑은 뜻일세

(귀록이 바야흐로 장수의 증표를 띠고, 또 매양 장군이라 자칭하기에 이렇게 읊는다.)

 

<참고자료>

최완수, 『겸재 정선 1~3』(현암사, 2009)

최완수, 『겸재 정선 진경산수화』(범우사, 1993)

이강호, 『고서화』(삼화인쇄주식회사, 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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