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

『삼국유사三國遺事』 「고조선古朝鮮」편

Moam Collection 2009. 10. 26. 23:36

종 목 : 국보 306-2호
명 칭 : 삼국유사권1-5 (三國遺事卷一-五)
분 류 : 목판본류
수 량 : 5권2책
지정일 : 2003.04.14
소재지 : 서울 관악구 신림2동 산56-1 서울대학교
시 대 : 조선 중종
소유자 : 국유
관리자 : 서울대학교규장각


古朝鮮 [王儉朝鮮]

魏書云. 乃往二千載有壇君王儉. 立都阿斯達.[經云無葉山. 亦云白岳. 在白州地. 或云在開城東. 今白岳宮是.] 開國號朝鮮. 與高同時. 古記云. 昔有桓因[謂帝釋也]庶子桓雄. 數意天下. 貪求人世. 父知子意. 下視三危太伯可以弘益人間. 乃授天符印三箇. 遣往理之. 雄率徒三千, 降於太伯山頂[卽太伯今妙香山.]神壇樹下. 謂之神市. 是謂桓雄天王也. 將風伯雨師雲師. 而主穀主命主病主刑主善惡. 凡主人間三百六十餘事. 在世理化. 時有一熊一虎, 同穴而居. 常祈于神雄. 願化爲人. 時神遺靈艾一炷, 蒜二十枚曰. 爾輩食之. 不見日光百日 便得人形. 熊虎得而食之忌三七日. 熊得女身. 虎不能忌. 而不得人身. 熊女者無與爲婚. 故每於壇樹下. 呪願有孕. 雄乃假化而婚之. 孕生子. 號曰壇君王儉. 以唐高卽位五十年庚寅.[唐高卽位元年戊辰. 則五十年丁巳. 非庚寅也. 疑其未實.] 都平壤城.[今西京.] 始稱朝鮮. 又移都於白岳山阿斯達. 又名弓[一作方]忽山. 又今彌達. 御國一千五百年. 周虎王卽位己卯. 封箕子於朝鮮. 壇君乃移於藏唐京. 後還隱於阿斯達爲山神. 壽一千九百八歲. 唐裵矩傳云. 高麗本孤竹國.[今海州] 周以封箕子爲朝鮮. 漢分置三郡. 謂玄菟(艸+兎], 樂浪, 帶方.[北帶方.] 通典亦同此說.[漢書則眞臨樂玄四郡. 今云三郡, 名又不同. 何耶.]

 

고조선 [왕검조선]

<위서(魏書)>에 이르기를, "지금으로부터 2,000년 전에 단군 왕검이 있어 아사달(阿斯達; 경經에는 무엽산無葉山이라 하고 또는 백악白岳이라고도 하는데 백주白州에 있었다.  혹은 개성開城 동쪽에 있다고도 한다.  이는 바로 지금의 백악궁白岳宮이다)에 도읍을 정하고 새로 나라를 세워 국호(國號)를 조선(朝鮮)이라고 불렀으니 이것은 고(高)[요堯:고려 정종의 이름 '요堯'를 피하여 기록하기 위함]와 같은 시기였다."

 

<고기(古記)>에 이르기를, "옛날에 환인(桓因: 제석帝釋을말함; 현재 전하는 『삼국유사』원본인 정덕본正德本에는 '환국桓國'이라 전하는데 일제시대 '환인'으로 날조되었다고 한다.)의 서자(庶子) 환웅(桓雄)이 자주 천하에 뜻을 두고 인간세상을 바라여 구하였다. 아버지가 아들의 뜻을 알고 삼위태백(三危太伯: 이의 해석에 관하여 설이 분분하다.)을 내려다보니 인간들을 널리 이롭게 할 만했다. 이에 천부인(天符印) 세 개를 주어 보내 인간(人間)세계를 다스리게 하였다. 환웅(桓雄)은 무리 3,000명을 거느리고 태백산(太伯山) 정상(곧 태백산太白山은 지금의 묘향산妙香山) 신단수(神檀樹) 아래로 내려왔다.  이곳을 신시(神市)라 하고, 이 분을 환웅천왕(桓雄天王)이라 한다. 그는 풍백(風伯)·우사(雨師)·운사(雲師)를 거느리고 곡식·수명(壽命)·질병(疾病)·형벌(刑罰)·선악(善惡) 등 주관하고, 모든 인간의 360여 가지 일을 주관하여 세상을 살피고 교화(敎化)했다.  당시 곰 한마리와 범 한 마리가 같은 굴 속에서 살고 있었는데, 항상 신웅(神雄), 즉 환웅에게 사람이 되게해달라 기원했다.  이때 신웅이 신령스러운 쑥 한 다발과 마늘 20개를 주면서 말하기를 '너희들이 이것을 먹고 백일동안 햇빛을 보지 않으면 곧 사람이 될 것이다' 했다.

 

이에 곰과 범이 이것을 받아 먹으며 삼칠일(21일) 동안 금기했는데, (금기를 100일 동안 잘 지킨) 곰은 여자의 몸을 얻었으나 범은 금기를 지키지 못하여 사람의 몸을 얻지 못했다. 웅녀(熊女)는 함께 혼인할 사람이 없었다. 그런고로 매일 단수(壇樹) 아래에서 아이 가지기를 주원했다. 이에 환웅이 임시로 변하여 그녀와 혼인하여 잉태해서 아들을 낳았으니, 이름을 단군 왕검(檀君王儉)이라 했다. 단군 왕검은 당고(唐高)[당요]가 즉위한 지 50년인 경인년(庚寅年; 요堯가 즉위한 원년元年은 무진戊辰년이니, 50년은 경인庚寅년이 아니라 정사丁巳년이므로 이것이 사실이 아닌지 의심스럽다)에 평양성(平壤城; 지금의 서경西京)에 도읍하여 비로소 조선(朝鮮)이라 불렀다.  또 도읍을 백악산(白岳山) 아사달(阿斯達)로 옮기니 궁홀산(弓忽山; 일명 방홀산方忽山)이라고도 하고 금미달(今彌達)이라고도 한다. 그는 1,500년 동안 이곳에서 나라를 다스렸다. 주(周)나라 호왕(虎王)[무왕]이 즉위하던 기묘(己卯)년에 기자(箕子)를 조선(朝鮮)에 봉했다. 이에 단군(檀君)은 장당경(藏唐京)으로 옮겼다가 뒤에 몰래 돌아와아사달(阿斯達)에서 산신(山神)이 되었는데, 나이가 1908세였다."

  

당나라 <배구전(裴矩傳)>에 이르기를, "고려(高麗)는 본래 고죽국(孤竹國; 지금의 해주海州)이었는데, 주(周)나라에서 기자(箕子)를 봉하면서 조선(朝鮮)이라 하였다. 한(漢)나라가 나누어 세 군(郡)으로 설치하였으니, 이것이 곧 현도(菟)··낙랑(樂浪)·대방(帶方;북대방北帶方)이다." <통전(通典)>에도 역시 이 말과 같다.(한서漢書에는 진번眞蕃·임둔臨屯·낙랑樂浪·현도玄菟  네 군으로 되어 있는데, 이것은 세군을 말하고 이름 또한 같지 않으니 어찌된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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