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정혼/진작

《추사정혼秋史精魂》에 부쳐

Moam Collection 2009. 12. 30. 21:51

 

 

《추사정혼秋史精魂》에 부쳐

어느덧《추사진묵》이 세상에 나온 지 2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추사진묵》이 출간되기 전 그리고 출간된 후 독자 분들께서 어떠한 반
응들을 보이실지 많은 걱정들이 있었습니다. 적지 않은 부족함에도 불
구하고 독자 분들의 과분한 성원과 격려에 감사할 뿐입니다. 좀 더 빠
른 시일 안에 초판본의 오류들을 바로잡고자 하였지만 개정판을 이전
출판사와 다른 곳에서 출간을 하게 되는 등의 여러 가지 일들과 천성
적인 제 게으름으로 시간이 지연되어 독자 분들께 송구스러운 마음뿐
입니다.


책의 내용면에서는 이 전 책과 비교하여 크게 달라진 부분은 없
습니다. 이 점 독자분들 특히《추사진묵 - 추사작품의 진위와 예술혼》
을 이미 구입하셨던 독자분들께 송구스럽습니다. 그렇지만, 독자분들
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필요한 경우 상당부분 설명이 추가되었고, 관
련학계의 최신 연구결과를 검토하여 반영하려 노력했습니다. 사실 개
정판의 작업을 하면서 책의 구성에 관한 많은 고민을 하였습니다.
2005년 8월《추사진묵》발간 후, 다시 많은 양의 추사에 관한 새로운
자료들이 나왔습니다. 그 중 대표적으로 청조경학淸朝經學연구가였던
일본학자 후지스카 지카시 (1879~1948, 등총린藤塚隣)의 유족들이 추사선
생 관련 자료를 포함한 소장자료 일만 여점을 과천시에 기증하였던 일
을 들 수 있습니다. 물론 이 기증된 추사관련 자료들에서도 적지 않은
문제작들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이 새로운 자료들에 관한 연구 성
과들을 한데 모아 묶어 하나의 단행본으로 엮으면 어떨까하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단행본으로 엮는 것이 추사작품에 대한 시대적 구분이
나 변천과정, 추사진작과 위작 (문제작) 등을 독자분들께 더욱 명료하게
보여드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단행본으
로 엮을 경우, 이전 책《추사진묵》의 책으로서의 생명이 다 하게 될 것
이고, 이전 책을 구입하셨던 독자분들께 더한 죄송스러움과 부담을 드
리게 될 것이 염려되어 부득이하게 책을 분책하기로 결정을 하였습니
다. 또한 개정작업 중에, 위에서 잠시 언급을 드렸던 것처럼, 이 개정
판을 새로운 출판사에서 출간하게 되어 책의 제題가《추사진묵秋史眞
墨》에서《추사정혼秋史精魂》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바뀌게 된 점 양
해 부탁드립니다.


《추사정혼秋史精魂》에서는 많은 것을 추가하려 하지는 않았습
니다. 다만 책의 완성도를 높이고자 더욱 노력을 하였습니다. 철자의
오류를 찾아 바로잡고 문장을 좀 더 매끄럽게 다듬고자 하였고, 잘못
된 도판, 도 52. <임한경명 발문>과 도 67. <명월매화> 대련을 바로잡
았습니다. 또한 작품의 구성에 있어서도 약간의 변화가 있었습니다.
그간의 새로운 연구에 기초해서 초판본에서‘연구작硏究作’으로 분류
하였던 작품들에 관한 재배치가 이루어졌고, 독자분들의 이해를 돕고
자《추사진묵》출간 이 후 논란이 되었던 <소심란 素心蘭(불이선란不二
禪蘭)>, <명선 茗禪> 등에 관한 부연설명과 소고를 부록란에 첨부하였습
니다. 또한 책의 디자인과 편집, 도판에 변화를 주어 독자분들께 산뜻
함과 보다 나은 도판들을 제공하고자 노력하였습니다.


책 출간 후에도 추사의 작품들 뿐 아니라 여러 작가들의 작품들
의 진위에 관한 많은 논란들이 있었습니다. 또 추사 선생님의 학문과
예술에 관한 다양한 기획 전시들이 이루어졌었습니다. 하지만 추사
서거 150주년을 기념한 대표적인 추사의 학문과 예술세계에 관한 기
획전이라 할 수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의 <추사 김정희 - 학예일치의 경
지>, 간송미술관,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의 기획 전시였던 <추사 김정
희 특별전>, <추사 문자반야전> 등의 모든 전시들에서 여전히 많은 문
제작들이 눈에 띄어 마음이 그리 가볍지 않습니다. 특히 국립중앙박물
관의 기획전시에 적지 않은 문제작들이 포함되었다는 일은 매우 심각
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한 국가를 대표하는 문화기관에서 이러
한 문제가 많은 전시들을 기획했다는 것은 그 기관 관리자, 학예사 등
과 관련학계 종사자들의 부족함을 명확하게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또
이러한 엉터리 기획 전시들을 엮으면서 발생된 대한민국 국민들의 혈
세로 이루어진 공적자금의 낭비문제도 간과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이
러한 점에서 예술의전당도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국립중앙박물관 구입작품들을 포함한 소장작품들 중 추사 작품 이외
에도 현재玄齋심사정沈師正(1707~1769), 표암豹菴강세황姜世晃
(1712~1791), 자하紫霞신위申緯(1769~1847) 등 많은 다른 문인, 예술가
들의 위작들이 포함되어있다는 사실입니다. 심지어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 중 절반이 위작이라는 말이 몇 해 전 있었던 문화관광위원회의
문화재청 감사에서 나왔을 정도입니다. 물론 절반이 가짜라는 말을 전
적으로 믿을 수 는 없겠지만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들 중 상당수의 위
작이 포함되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위의 감사에서
이와 같은 논의 이외에도 많은 의미있는 지적과 논의가 있었습니다.
당시 국민회의 최재승 의원은 문화재청의 목조건물 관리의 문제점을
지적하였고 한나라당 남경필 의원은 실사를 통한 대한민국 미술계에
서의 위작의 문제점들을 지적하며 국가가 보장하는 공신력 있는 감정
기구 설립의 필요성을 말하였습니다. 이미 자정기능을 상실한 한국미
술계와 미술시장의 질서를 바로 세우기 위하여 국가가 적극적으로 나
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와 같이 국가가 보장하는 공신력있는 감정
기구와 더 나아가 경매기관의 설립이 이루어지면 상업화랑들과 경매
회사들의 상업행위에 관한 세금의 문제도 자연스럽게 해결될 수 있으
리라고 생각합니다. 얼마 전 우리나라 국보 1호이자 대표적인 목조건
축물인 숭례문崇禮門의 전소사건으로 온 국민이 허탈해하고 마음 아
파하고 있습니다. 문화재청이 이 당시의 이 지적에 좀 더 많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였더라면 화재로 인한 국보 손실이라는 실로 민족의 자존
심을 처참하게 만든 이 사건을 막을 수 있지는 않았을까하는 생각에
많은 아쉬움이 남습니다. 특히 문화미술계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위작
의 문제는 가벼이 넘겨서는 안 된다는 생각입니다. 대한민국 문화예술
계를 바로잡기 위하여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대야할지 막막하기만
합니다.


우리나라의 주요 상업화랑들이 대주주로 있는 대표적 경매사인
서울옥션과 K옥션의 경우 그 경매품의 진위에 관한 논란이 끊이지 않
고 있습니다. 이 위작의 문제가 쉽게 근절되지 않는 이유는 여러 가지
가 있겠습니다만 근본적인 문제는 학계와 미술계 종사자들의 안목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점입니다. 모든 문화재들의 주요 현안들을 결정하
는 현 문화재위원회 위원장 이하 문화재 위원들만 살펴보아도 이들 중
정확하게 서화를 감식할 수 있는 감식안을 갖춘 분을 찾아 볼 수 없습
니다. 한국미술을 전공하고 있는 국외 학자들을 지금도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상황에 지금으로부터 수십 년 전 국외 유수의 교육기관들에서
한국미술로 학위를 받고 국내에서 활동하는 분들의 행적도 이해하기
쉽지 않습니다. 또 국외에서 중국미술 등으로 학위를 받고 국내에서
한국미술 분야로 전향하여 활발한 연구활동을 하는 분들도 쉽게 납득

이 가지 않습니다. 물론 한국미술과 한국 인접 국가들의 미술을 비교
분석하여 그 영향과 관계들을 연구하는 작업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세
계 미술사에서 자신이 속한 분야의 중요한 연구 등으로 인정받는 과정
없이 단지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자신의 전공분야도 아닌 한국미술을
주요 연구분야로 삼는것이 과연 타당한 것인지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비단 고미술 분야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현대미술 분야도 그 문
제가 심각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한국 현대미술의 상황을 살펴보
면, 자체적인 예술론을 생산하지 못하고 20세기 초 중반부터 활성화된
전통적인 예술론의 근간을 뒤엎은 서구의 이론을 답습하고만 있다는
생각입니다. 물론 이러한 현재의 예술사조가 현대사회의 발전에 분명
히 기인한 바가 있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에 이러한 예술론이 현대 사
회에서 그 긍정적인 기능보다는 부정적인 영향이 더 커졌다고 생각합
니다. 미술사와 예술철학 등을 공부하면서“예술의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예술이란 무엇인가?”또“예술은 어떠한 형
태로 되어야 하는가?”라는 두 질문들과 함께 제 자신에게 끊임없이
물어 왔습니다. 물론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질문들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정답은 있을 수 없습니다. 과연 우리가‘예술’
을 공부하는 목적이 무엇일까요? 비단‘예술’뿐 아니라 지금 우리가
공부하고 있는 경제, 경영, 법학, 과학 등 모든 학문분야를 지금 우리

가 공부하는 궁극적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
는 추사 김정희 선생님의 예술을 포함한 전통 문인화사상과 서양의 예
술철학들을 비교하며 예술의 본질적 의미와 가치, 또 그 이유를 보았
습니다.(부록 7 참조) 우리가 예술을 포함한 모든 학문분야를 공부하는
이유는 궁극적으로 작고 좁게는 나, 우리가족, 우리사회, 우리나라, 크
고 넓게는 온 나라, 전 인류를 위하여 정신적으로 물질적으로 좀 더 나
은 세상을 만들기 위함이 아닐까요? 그러나, 현재 현대미술의 주 경향
들을 살펴보면 이러한 본질적인 예술적 의미와 가치와 점점 멀어지고
있습니다.‘뉴 미디어 아트’,‘팝 아트’,‘비디오 아트’등 다소 난해
하고 가볍고 비이성적이고 때때로 선정성, 상업성 등이 짙은 이와 같
은 작품들이 과연 우리자신, 전 인류의 내적, 외적 향상에 어떠한 기여
를 할 수 있을까요? 이러한 맥락에서 지금 경기문화재단에서 국민들
의 혈세로 설립추진 중인‘백남준미술관’의 건립이 그다지 반갑지만
은 않은 이유입니다. 또, 백남준과 그의 작품에 대한 깊은 성찰없이
맹목적인 추종과 떠받들기에 급급한 한심한 학계, 미술계관련 인사들
의 행태와 또한 이를 보도하기에 바빴던 언론매체들에도 문제가 있다
고 생각합니다. 이제 차분히 백남준과 그의 예술에 관한 다각적이고
진지한 재조명 작업이 필요한 때라고 생각합니다.


위작의 문제는 예술작품들이 물질적 가치로 여겨지는 한 없어
지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아니 없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방

관만 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의 자녀들에게 올바른 예술관과 예술의
올바른 가치를 알려주어야 한다는 사명감이 그 이유입니다. 또 이것
이 이 책《추사정혼》의 근본 뜻입니다. 이 근본 뜻은 이후 나올 책들에
서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개정판《추사정혼》의 작업을 하면서 과욕
은 부리지 않겠다고 다짐 또 다짐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곳곳에 욕심
을 부린 흔적이 눈에 띄어 얼굴이 화끈거립니다. 그렇지만 그 흔적들
을 지우지는 않으려 합니다. 지금 제가 가감없이 독자분들께 들려드리
고 싶은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아직 많은 날들을 살지는 않았
지만 감히 말씀드리자면, 예술을 포함한 세상의 모든 문제들은 절대적
인 진리나 정답이 있을 수 없고 다만 선택의 문제라 생각합니다. 그렇
기에 제 뜻을 독자분들께 강요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만 이 글, 이
책에 담긴 또 앞으로 나올 글과 책에 담길 예술의 본질적 의미와 가치
를 곰곰이 또 차근차근 되새겨 보시기를 바랍니다.


지금 여러 갈래의 길들이 우리 눈앞에 펼쳐져 있습니다. 선택은
온전히 독자분들의 몫입니다.


2008년 7월
모암문고 The Moam Collection 이영재, 이용수 드림

ⓒ 모암문고 www.moamcollection.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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