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정혼/진작

여는 글

Moam Collection 2010. 1. 1. 18:03

 

추사 김정희, 「설백지성」, 종이에 먹(Ink on Ppper), 25.0 x 88.5 cm, 모암문고 소장(The Moam Collection)

 

여는 글

지금은 과거에 비해 추사 김정희에 대한 많은 연구 논문과 저서들이
나오고 있다. 또 이와 함께 여러 화랑들에서 추사 서화 예술에 대한
기획 전시들이 많이 이루어지고 있어 비단 학계의 전공자들 뿐 아니라
일반 시민들의 관심도 날로 증가하고 있다. 이는 분명히 환영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필자는 걱정이 앞선다. 2002년 4월에 출간
되어 세간의 높은 관심과 주목을 받아온《완당평전》(유홍준 지음)을 비
롯한 여러 학술 논문들과 저서들 또, 최근 과천시의 <추사탁본전>, 간
송미술관 주관의 <추사명품전>을 비롯하여 동산방, 학고재의 <완당과
완당바람전> 등 추사선생의 대표적인 기획 전시들에서 진작보다 타
인작과 위작의 수가 더 많다. 그 뿐이 아니다, 매주 공중파에서 방영되
는 서화 감정 프로그램의 경우 잘못된 감정과 작품설명이 종종 눈에
띄었는데 그중 추사 작품의 경우는 더욱 극심하다. 이 프로그램의 경
우 추사작품의 예를 들어보면 감정단에서 진품으로 감정한 최근의
2004년 12월 26일 소개된 <완당서첩>, 2003년 8월 24일 <벽수각碧水
閣> 목판, 2002년 12월 15일 방영된 <영화구년곡수서永和九年曲水序

산음도상백화개山道上百花開> 대련 등은 소장자분들께는 죄송스러
우나 진품이 아니었다. 또 수년 전‘병거사病居士’로 관서된 <만휴卍
休> 횡액 작품을 추사진품으로 감정했으나 이는 추사작품이 아니었다.
(필자는《추사진묵》초판에서 이 작품을 이재 권돈인 30대 작품으로 생각했었지만
최근의 연구결과‘병거사病居士’를 추사의 아호로 오인한 위작자의 위작으로 생각
된다.) 이 프로그램이 햇수로 십여 년간 방영되고 있으니 더 더듬어보
면 추사작품뿐 아니라 다른 작품들에 있어서도 적지 않은 오판의 경우
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방송사는 이 후 이러한 정확하지
않은 감정과 작품설명 등의 경우를 방지하기위해서 상인위주로 이루
어진 평가단의 판단에만 의지할 것이 아니라 좀 더 긴밀한 학계 학자
들과의 협의를 모색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또한 아직도 공영방송과
어울리지 않는 실력과 자격의 상인평가단 위주의 감정과 또 그에 대한
오판의 경우로 미루어 프로그램의 존폐에 관한 진지한 논의가 있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이렇게 추사의 진작이 아닌 그 진위가 불분명한 문제작(위작)들
이 현 학자들과 미술평단의 무지의 소치인지 아니면 속된 욕심 때문인
지 추사의 진품으로 유통되고 있으니 걱정이 앞설 수밖에 없다. 이러
한 이유들로 온 국민, 나아가서는 전 세계의 한국미술 애호가들과 관
계자들의 눈과 귀를 멀게 하고 있으니 이는 문화 국민임을 자랑하는
대한민국 국민들과 대한민국의 수치가 아닐 수 없다. 이에 필자는 이

러한 상황에 문제를 제기하여 이에 대한 진지한 논의와 토의가 이루어
지기를 희망했다. 하지만 현 학계 고서화관련 연구자들은 익명의 발
언만을 쏟아내고 감식안을 뽐내던 학자들도 함구하며 피하기 급급할
뿐 추사선생의 예술세계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제대로 된 실력 없이 자신들의 기득권만을 챙기기에 몰두해온 그들에
게 제대로 된 평가를 바란다는 것 자체가 어찌 보면 어불성설일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이대로 방관만 할 수는 없다는 생각에 노구를 일으
켜 졸고나마 이 책을 저술하게 되었다.


추사작품 유통의 현실을 예를 들어보자. 지난 임오년(2002) 3월
22일부터 4월 11일까지‘동산방’과‘학고재’에서 전시되었던 주요 추
사작품들 중, 진작은 9개 작품에 불과하고 나머지 48개 작품은 타인작
이거나 문제작(위작)들이었다. 이와 더불어 추사 일대기를 다룬 유홍준
저《완당평전》을 살펴보면, 추사 일대기를 최초로 시도하였고 시기별
그의 작품들을 집대성하였다는 공보다도 그 과가 큰, 많은 오류들이
발견된다. 수많은 문제작(위작)들을 수록한 것이 그 첫 번째이고, 정확
한 근거 없이 집자 판본을 수록한 것이 그 두번째요, 마지막으로 정확
하지 않은 해석과 작품설명 또 추사 작품이 아닌 그의 제자들 - 이재彛
齋권돈인權敦仁, 우봉又峯조희룡趙熙龍, 침계?溪윤정현尹定鉉, 석파
石坡이하응李昰應등-의 작품들을 추사작품으로 오인하여 수록한 것
이다. 현재 전하는 수많은 자료들 중에서 그 진위를 판별하여 자료를

선별할 수 있는 감식안을 갖추는 것은 미술사학자에게 기본적으로 가
장 필요한 덕목이라 할 수 있다. 물론 비단 유홍준만의 문제는 아니다.
현재 한국미술사학계에서 이러한 감식안을 갖춘 분을 찾아 볼 수 없
다. 이는 정말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우리 고등교육기관들의
교과과정으로는 이러한 전문인들을 키울 수 없다. 이에 정부는 관련기
관, 학교관계자들과 더불어 우리에게 가장 필요하고 알맞은 교과과정
에 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생각된다.


<완당과 완당 바람전>의 전시 도록 중 9번 <직심도량直心道場>
예서 액,‘우사선궤병거사芋社禪?病居士’로 관서된 작품과 도록 44번
행서‘기제우사연등염나寄題芋社蓮燈髥那’로 관서된 작품의‘우사芋
社’두 자를 비교하여 보니 이 두 작품이 동일인의 작품임을 알 수 있었
다.‘우사芋社’는 초의선사의 아호이며,‘거사居士’,‘병거사病居士’의
관서는‘염髥’‘염나髥那’와 같은 이재 권돈인의 관서임이 <완염합벽
阮髥合璧>의 존재로 확실해졌다.


본 저서에서는 추사 김정희에 관한 역사적인 접근이나 그의 학
문세계에 관한 설명은 되도록 피하려고 노력했다. 그 이유는 필자의
문견이나 식견이 많이 부족한 점도 있고, 이 부분에 관하여는 기존의
많은 논문들과 저서들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추사와 그의 작품
세계에 관한 제일 큰 문제점이 그의 작품에 관한 진위의 판별이라는

필자의 생각 때문이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작품 진위의 구별에 그 역
점을 둘 것이며, 이에 앞서 제1장에서‘고서화 감상의 바른 길正道’이
라는 소제목으로 고서화 및 기타 예술 작품을 바르게 감상하는 법을
모암문고茅岩文庫소장, 국오菊塢작 <충절가도>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인재仁齋작 <고사관수도> 작품을 비교하며 수록하여 후학들이
나 예술애호가들, 더 나아가서는 온 국민들과 함께 예술 작품들을 올
바로 감상하는 방법을 모색해 보려 한다.


현재 유통되고 있는 추사작품을 크게 4가지 - 진작, 타인작, 위
작, 연구작 - 로 구분했다. 그 구분 기준은 글씨의 필획筆劃, 작자作字
(글자 모양을 만드는 것), 배자配字(글자의 배치), 행획行劃(글자를 만들기 위해
붓에 먹을 찍어 그려가는 행위) 등에 의한 것으로 그 이유를 설명함에 있어
굉장히 어려움을 느꼈다. 나름대로 열심히 설명하려고 노력했으나 부
족한 부분이 많아서, 서도書道(이 책《추사정혼》에서는 서예書藝라는 용어대
신 서도書道의 용어를 택했다. 서예라는 기예의 단계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필자
의 생각 때문이다. 일본에서 사용하고 있다는 이유로 옳은 것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는 것은 정당한 사유가 되지 못한다는 생각이다.)에 친숙하지 못한 독자들에
게는 다소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있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있다. 하지
만 필자의 설명대로 또‘고서화 감상의 바른 길正道’과‘추사 서도의
이해’를 읽고 도판들을 대조해 가며 보면, 그 설명이 어느 정도 이해가
가리라고 생각하며 위안을 삼는다. 진작眞作은 그 말 그대로 추사의

진품을 일컫는 것이며, 타인작他人作은 추사의 작품이 아닌 그 제자들
- 이재 권돈인, 우봉 조희룡, 침계 윤정현, 석파 이하응 - 의 작품들을
추사 작품으로 오인한 것을 지적한 것이다. 위작僞作은 가품假品을 말
하는 것이고, 연구작硏究作은 그 진위가 명확하지 않아 좀 더 연구가
필요한 작품들을 골라놓은 것이다.


이 책《추사정혼》은 많은 선학들의 연구와 모아놓은 자료들의
기반위에서 이루어졌고 선행된 연구에 빚진 부분이 적지 않다. 하지만
이전 연구의 성과들을 그대로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이 선행된 연구들
을 하나하나 검토 비평하였고 이 과정에서 작품의 진위가 바뀐 경우가
적지 않아 문제작(위작)을 소장하고 계신 분들께 죄송스런 마음이 적지
않다. 하지만 우리의 후손들에게 올바른 예술관과 예술의 올바른 가치
를 전하여 주기위해 거쳐야하는 과정임을 이해해 달라는 말을 전하고
싶다. 또, 이 졸고가 우리의 바른 예술문화 특히 올바른 추사문화의 구
축과 다른 후학들의 학문 연구에 조금의 도움이라도 된다면 필자에게
는 더없는 기쁨과 위안이 될 것이다.

이 책이 나오기까지 많은 분들의 도움이 있었다. 하지만 그분들
의 이름을 일일이 열거는 하지 않으려 한다. 그분들에게 감사하는 마
음을 그저 몇 자의 겉치레로 끝내고 싶지 않아서이다. 어머니의 품으
로 돌아가게 될 그날까지 감사하는 마음을 고이고이 접어 간직하려고

한다. 다만 필자와 그 길고 두터운 인연을 나누다 먼저 세상을 뜨신 형
님, 전 여의도 성모병원장 정환국 박사와 나의 서화 세계를 진심으로
이해해 주며 독려를 해주던 나의 벗, 전 서울대학교 섬유공학과 이재
곤 교수의 영정에 이 책을 바친다.


2008년 7월
흰눈집 주인 이영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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