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

말갈(靺鞨; 혹은 물길勿吉)과 발해(渤海)

Moam Collection 2010. 1. 26. 12:42

 

靺鞨(一作勿吉)   渤海

通典云. 渤海, 本粟末靺鞨. 至其酋祚榮立國. 自號震旦. 先天中(玄宗王子)始去靺鞨號. 專稱渤海. 開元七年(己未)祚榮死. 諡爲高王. 世子襲立. 明皇賜典冊襲王. 私改年號. 遂爲海東盛國. 地有五京, 十五府, 六十二州. 後唐天成初. 契丹攻破之. 其後爲丹所制.(三國史云. 儀鳳三年. 高宗戊寅. 高麗殘孽類聚. 北依太伯山下. 國號渤海. 開元二十年間. 明皇遣將討之. 又聖德王三十二年. 玄宗甲戌渤海靺鞨越海侵唐之登州. 玄宗討之. 又新羅古記云. 高麗舊將祚榮姓大氏. 聚殘兵. 立國於大伯山南. 國號渤海. 按上諸文. 渤海乃靺鞨之別種. 但開合不同而已 按指掌圖. 渤海在長城東北角外.) 賈耽郡國志云. 渤海國之鴨淥南海扶餘橻城四府, 並是高麗舊地也. 自新羅泉井郡(地理志. 朔州領縣有泉井郡. 今湧州.) 至橻城府三十九驛. 又三國史云. 百濟末年. 渤海靺鞨新羅分百濟地.(據此. 則渤海又分爲二國也.) 羅人云. 北有靺鞨. 南有倭人. 西有百濟.是國之害也. 又靺鞨地接阿瑟羅州. 又東明記云. 卒本城連靺鞨.(或云今東眞.)羅第六衹麻王十四年(乙丑) 靺鞨兵大入北境. 襲大嶺冊, 過泥河. 後魏書靺鞨作勿吉. 指掌圖云. 挹屢與勿吉皆肅愼也. 黑水. 沃沮. 按東坡指掌圖. 辰韓之北. 有南北黑水. 按東明帝立十年滅北沃沮. 溫祚王四十二年南沃沮二十餘家來投. 新羅又赫居世五十三年東沃沮來獻良馬. 則又有東沃沮矣. 指掌圖. 黑水在長城北. 沃沮在長城南.

 

말갈(靺鞨; 혹은 물길勿吉)과 발해(渤海)

『통전通典』에 이르기를,  "발해渤海는 본래 속말말갈粟末靺鞨인데, 그 추장酋長 조영[大祚榮]에 이르러 나라를 세우고 (국호國號를) 스스로 진단震旦이라 했다. 선천先天 연간(年間; 현종玄宗의 임자년壬子年, 712 이다)에 비로소 말갈靺鞨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발해라 하였다. 개원開元 7년(719, 己未)에 조영[大祚榮]이 죽자, 그 시호諡號를 고왕高王이라 했다. 세자世子가 대(왕위, 代)를 이어 왕위에 오르자 명황明皇은 그를 책봉하여 왕위를 잇게 했다. 사사로이 연호를 인안으로 고쳐 마침내 해동성국이 되었다. 그 땅에는 오경五京·십오부十五府육십이주六十二州가 있었는데, 그 후당後唐 천성天成 초에 거란契丹의 공격을 받아 격파된 이후로 마침내 거란의 지배를 받았다."(『삼국사三國史』에 이르기를, "의봉儀鳳 3年, 고종高宗 무인년戊寅年에 고구려의 잔당(남은 무리)가 군사를 모아 북쪽 태백산太伯山 아래에 의지하여 국호를 발해渤海라 하였는데, 개원開元 20年 경에 (당唐의) 명황明皇이 장수를 보내서 발해渤海를 토벌하녔다. 또 성덕왕聖德王 32年, 현종玄宗 갑술甲戌년에 발해渤海·말갈靺鞨이 바다를 건너 당唐나라 등주登州를 침범하니, 현종玄宗이 토벌하였다" 하였다. 또 『신라고기新羅古記』에 이르기를, "고구려高句麗의 구장舊將 조영祚榮의 성姓은 대씨大氏이다. 남은 군사를 모아 태백산太伯山 남쪽에 나라를 세우고 국호를 발해渤海라고 했다" 하였다. 이상의 여러 글을 살펴보건대, 발해渤海는 바로 말갈靺鞨의 별종別種(다른 종족)으로서 다만 그 갈라지고 합한 것이 서로 같지 않을 뿐이다. 또 『지장도指掌圖』를 상고해 보면 발해渤海는 (만리萬里) 장성長城 동북東北 모퉁이 밖에 있다" 하였다.)

 

가탐賈眈의 『군국지郡國志』에 이르기를, "발해국渤海國의 압록鴨綠 ·남해南海 ·부여扶餘 ·추성橻城 사부四府는 모두 고구려高句麗의 옛땅인데  신라新羅 천장군泉井郡; 『지리지地理志』에는 삭주朔州 영현領縣에 천정군泉井郡이 있있다 하였는데, 지금의 용주湧州이다)에서 추성부橻城府에 이르기까지 도합 39역三十九驛이 있다" 하였다. 또 『삼국사三國史』에 이르기를, "백제百濟 말년에 발해·말갈·신라가 백제의 땅을 나누었다" 하였다(이에 의하면 발해는 또 나뉘어 두 나라가 된 것이다).

 

신라 사람이 말하기를, "북쪽에는 말갈이 있고 남쪽에는 왜인倭人이 있고, 서쪽에는 백제가 있으니 이것이 나라의 해가 된다" 하였고, 또 "말갈은 땅은 아슬라주(阿瑟羅州, 지금의 강릉지방)에 연접되어 있다" 하였다.

 

『동명기東明記』에 이르기를, "졸본성卒本城은 땅이 말갈(혹은 지금의 동진東眞이다)과 이어져 있다.  신라의 제6대 지마왕祗摩王 14년(丑乙, 125) 말갈의 군사가 북쪽 국경으로 들어와 대령大嶺의 성책城柵(목책)을 습격하고 이하泥河를 건너갔다" 하였다.

 

『후위서後魏書』에 이르기를, "말갈은 바로 물길勿吉이다"라 하였고, 『지장도指掌圖』에 이르기를, "읍루와 물길은 모두 숙신肅愼이다"라 하였다.

 

흑수黑水, 옥저沃沮는 동파東坡의 『지장도指掌圖』를 깊이 살펴보니. "진한 북쪽에 남북의 흑수黑水가 있다" 하였다.  살펴보건대, 동명제東明帝는 즉위한 지 10년만에 북옥저北沃沮를 멸망시켰고, 온조왕溫祚王 42년에 남옥저南沃沮 20여 호가 백제에 투항投降 했으며(원문에는 '신라'라 되어있으나 '백제'의 오기이다), 혁거세赫居世 52년에 동옥저東沃沮가 와 좋은 말을 바쳤다 하였다. 그러하니 또 동옥저東沃沮도 있었던 것이다. 『지장도指掌圖』에 흑수는 만리장성 북쪽에 있고, 옥저는 만리장성 남쪽에 있다 하였다.

 

<참고자료>

일연(김원중 옮김), 『삼국유사』, (서울: 을유문화사, 2002) 
일연(이동환 역주), 『삼국유사(상)』, (서울(경기): 삼중당, 1993)
일연(이동환 역주), 『삼국유사(하)』, (서울(경기): 삼중당,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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