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

이서국伊西國 오가야五伽耶

Moam Collection 2010. 1. 26. 13:13

 

  

伊西國

弩禮王十四年. 伊西國人來攻金城. 按雲門寺古傳諸寺納田記云. 貞觀六年壬辰伊西郡今郚村零味寺納田. 則今郚村今淸道地. 卽淸道郡古伊西郡.

 

五伽耶
五伽耶(按駕洛記贊云. 垂一紫纓. 下六圓卵. 五歸各邑. 一在茲城. 則一爲首露王. 餘五各爲五伽耶之主. 金官不入五數當矣. 而本朝史略. 並數金官而濫記昌寧誤.)

阿羅(一作耶)伽耶(今咸安) 古寧伽耶(今咸寧.) 大伽耶(今高靈.) 星山伽耶(今京山一云碧珍.) 小伽耶(今固城.) 又本朝史略云. 太祖天福五年庚子改五伽耶名. 一金官(爲金海府.) 二古寧(爲加利縣) 三非火(今昌寧恐高靈之訛) 餘二阿羅, 星山(同前. 星山或作碧伽耶.)

 

이서국伊西國

노례왕弩禮王 14년에 이서국 사람이 금성金城을 침공해 왔다. 운문사雲門寺에 옛부터 전하여 내려오는 『제사납전기諸寺納田記』에 이르기를, "정관貞觀 6년 임진(壬辰, 632)에 이서군伊西郡의 금오촌 영미사零味寺에서 밭을 바쳤다" 하였다. 금오촌은 지금의 청도淸道 땅이니 곧 청도군淸道郡은 옛 이서군이다. 

 

오가야五伽耶
(『가락국기駕洛國記』의 찬贊을 보면, 자줏빛 끈 하나가 하늘에서 내려와 둥근 알[난卵] 여섯 개를 내려 주었는데,  이 중 다섯 개 알은 각 읍邑으로 돌아가고 한 개는 이 성城에 있게 되었다. 그 중 하나는 수로왕首露王이 되었고, 나머지 다섯 개는 각각 다섯 가야伽耶의 주인이 되었으니, 금관金官國이 이 다섯 개에 들지 않은 것은 마땅하다. 그런데 (고려의)『본조사략本朝史略』에는 금관金官까지 그 수에 넣고 창녕昌寧까지 더 기록했으니 잘못이다)

 

오가야는 아라(阿羅: 阿耶라고도 한다)가야(伽耶: 지금의 함안咸安이다)·고령가야(古寧伽倻: 지금의 함녕咸寧)·대가야(大伽耶: 지금의 고령高靈)·성산가야(星山伽耶: 지금의 경산京山 혹은 벽진碧珍)·소가야(小伽耶; 지금의 고성固城)이다.

 

또 『본조사략本朝史略』에 이르기를, "태조太祖 천복天福 5년 경자(庚子, 940)에 오가야五伽耶의 이름을 고쳤는데,  첫째 금관(金官: 김해부金海府가 되었다), 둘째 고령(古寧: 지금의 가리현加利縣이 되었다), 셋째 비화(非火: 지금의 창녕昌寧이니, 고령高靈의 잘못인 듯 싶다)요, 나머지 둘은 아라阿羅와 성산星山(위 주注와 같다. 성산星山은 혹 벽진가야碧珍伽耶라고도 한다) 이다"라 하였다. 

 

<참고자료>

일연(김원중 옮김), 『삼국유사』, (서울: 을유문화사, 2002) 
일연(이동환 역주), 『삼국유사(상)』, (서울(경기): 삼중당, 1993)
일연(이동환 역주), 『삼국유사(하)』, (서울(경기): 삼중당,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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