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정혼/퇴우이선생진적

1_서序

Moam Collection 2010. 5. 20. 17:58

1_서序

 

 

 


《퇴우이선생진적첩退尤二先生眞蹟帖》은 퇴계退溪이황李滉
(1501~1570)의 친필저술인 <회암서절요晦庵書節要서序>와 이 서
문을 접하고 감상하였던 우암尤庵송시열宋時烈(1607~1689)의 두
편의 발문, 그리고 겸재謙齋정선鄭敾(1676~1759)의 진경眞景(실경
實景)에 바탕을 둔 네 폭의 기록화 등이 담겨있는 작품으로 1975
년 보물寶物585호로 지정된 작품이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퇴계 이황은 율곡栗谷이이李珥(1536~
1584)와 더불어 조선시대 성리학의 두 거봉으로 숭앙받는 인물이
다. 퇴계의 당대 위치와 평가에 관하여는 왕조실록[선조수정宣祖
修正3년 12월 1일(갑오甲午)]에 실려있는 이황의 졸卒기를 살펴보
면, 그 대강을 미루어 알 수 있다.1)


朔甲午/崇政大夫判中樞府事李滉卒. 命贈領議政, 賜賻葬祭如
禮. 滉旣歸鄕里, 屢上章, 引年乞致仕, 不許. 至是有疾, 戒子寯
曰, 我死, 該曹必循例, 請用禮葬, 汝須稱遺令, 陳疏固辭. 且墓道
勿用碑碣, 只以小石, 題其面曰, 退陶晩隱眞城李公之墓以嘗所
自製銘文, 刻其後可也. 數日而卒, 寯再上疏辭禮葬, 不許. 滉, 字
景浩, 其先眞城人. 叔父, 兄瀣, 皆聞人. 滉天資粹美, 材識穎
悟, 幼而喪考, 自力爲學, 文章夙成, 弱冠遊國庠. 時經己卯之禍,
士習浮薄, 滉以禮法自律, 不恤人譏笑, 雅意恬靜. 雖爲母老, 由

科第入仕, 通顯非所樂也. 乙巳之難, 幾陷不測, 且見權奸濁亂,
力求外補以出, 旣而兄瀣權倖死, 自是, 決意退藏, 拜官多不
就. 專精性理之學, 得朱子全書, 讀而喜之, 一遵其訓. 以眞知實
踐爲務, 諸家衆說之同異得失, 皆旁通曲暢, 而折衷於朱子, 義
理精微, 洞見大原. 道成德立, 愈執謙虛, 從遊講學者, 四方而至,
達官貴人, 亦傾心向慕, 多以講學飭躬爲事, 士風爲之丕變. 明
廟嘉其恬退, 累進爵徵召, 皆不起. 家居禮安之退溪, 仍以寓號.
晩年築室陶山, 有山水之勝, 改號陶. 安於貧約, 味於淡泊, 利
勢紛華視之如浮雲. 然平居不務矜持, 若無甚異於人, 而於進退
辭受之節, 不敢分毫蹉過. 其僑居漢城, 隔家有栗樹, 數枝過墻,
子熟落庭, 恐家?取啖, 每自手拾, 投之墻外, 其介潔如此. 上之初
服, 朝野?望皆以爲, 非滉不能成就聖德. 上亦眷注特異, 滉自以
年已老, 才智不足當大事, 又見世衰俗, 上下無可恃, 儒者難以
有爲, 懇辭寵祿, 必退乃已. 上聞其卒嗟悼, 贈祭加厚, 太學生及
弟子會葬者數百人. 滉謙讓不敢當作者, 無特著書, 而因論學酬
應, 始筆之書, 發揮聖訓, 辨斥異端, 正大明白, 學者信服. 每痛中
原道學失傳, 陸、王諸子頗僻之說大行, 常極言竭論, 以斥其非.
我國近代亦有花潭徐氏之學, 有認氣爲理之病, 學者多傳述, 滉
爲著說以明之. 所編輯有理學通錄朱子節要及文集行于世,
世稱退溪先生. 論者以爲, 滉爲世儒宗, 趙光祖之後, 無與爲比,
滉才調器局, 雖不及光祖, 至深究義理, 以盡精微, 則非光祖之所
及矣.


숭정대부崇政大夫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이황李滉이졸卒하였다.
그에게 영의정領議政을 추증하도록 명하고 부의賻儀2)와 장제葬祭3)
를예禮로 내렸다. 이황이 향리에 돌아가 누차 상소하여 연로하므로
치사致仕4)할것을빌었으나허락하지않았다. 이때병이들었는데아
들 준寯에게 경계하기를, “내가 죽으면 해조該曹5)에서 틀림없이 관
례에따라예장禮葬을하도록청할것인데, 너는모름지기나의유령

遺令이라 칭하고 상소를 올려 끝까지 사양하라. 그리고 묘도墓道에
도 비갈碑碣을 세우지 말고 작은 돌의 전면에‘퇴도만은진성이공지
묘退陶晩隱眞城李公之墓’라고 쓰고, 그 후면에 내가 지어둔 명문
銘文을 새기라.”하였다. 그로부터 며칠 후 죽었는데 준이 두 번이나
상소하여 예장을 사양하였으나, 허락하지 않았다. 이황의 자字는 경
호景浩이고, 선대는진성인眞城人이며, 숙부우 와형인해瀣도다
명망이 높았다. 이황은 타고 난 바탕이 수미粹美하고 재주와 식견이
영오穎悟6)하였다.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자력으로 학문을 하였는
데, 문장文章이 일찍 성취되었고, 약관에 국상國庠7)에 들어갔다. 당
시는기묘사화를겪은후라서사습士習이부박浮薄하였으나, 이황은
예법禮法으로 자신을 지키면서 남의 조롱이나 비웃음 따위는 아랑곳
하지 않고, 고상한 뜻과 차분한 마음을 가졌다. 비록 늙은 어머니를
위하여 과거를 통해 벼슬을 하기는 하였으나 통현通顯8)되기를 좋아
하지는 않았다. 을사년 난리에 거의 불측한 화에 빠질 뻔하고 권간權
奸9)들이 조정을 어지럽히는 꼴을 보고는 되도록 외직에 보임되어 나
가고자하였고, 얼마후형해가권간을거슬러억울한죽음을당하자
그때부터는물러가숨을뜻을굳히고벼슬에임명되어도대부분나가
지 않았었다. 오로지 성리性理의 학문에 전념하다가《주자전서朱子
全書》를읽고서는그것을좋아하여한결같이그교훈대로따랐다. 진
지眞知와 실천實踐을 위주로 하여 제가諸家학설의 동이득실同異
得失에 대해 널리 통달하고 주자의 학설에 의거하여 절충하였으므로,
의리義理에있어서는소견이정미精微하고도道의대원大源에대하
여환히통찰하고있었다. 도가이루어지고덕이확립되자더욱더겸
허하였으므로그에게배우려는학자들이사방에서모여들었고달관達
官·귀인貴人들도 마음을 다해 향모向慕하였는데, 학문 강론과 몸
단속을 위주하여 사풍士風이 크게 변화되었다. 명종明宗은 그의 염
퇴10)恬退한태도를가상히여겨누차관작을높여징소徵召하였으나,
모두나오지않고예안禮安의퇴계退溪에살면서이지명에따라호

號를 삼았었다. 늘그막에는 산수山水가좋은도산陶山에집을짓고
호를 도수陶로 고치기도 하였다. 빈약貧約을 편안하게 여기고 담
박淡泊을 좋아했으며 이익이나 세력, 분한 영화 따위는 뜬구름 보듯
하였다. 그러나 보통 때는 별다르게 내세우는 바가 없어 일반 사람과
크게 다른 점이 없어 보였지만, 진퇴進退·사수辭受문제에 있어서
는 털끝만큼도 잘못이 없었다. 그가 서울에서 세들어 있을 때 이웃집
의 밤나무 가지가 담장을 넘어 뻗쳐 있었으므로 밤이 익으면 알밤이
뜰에 떨어졌는데, 가동家이 그걸 주워 먹을까봐 언제나 손수 주워
담너머로던졌을정도로개결한성품이었다. 주상의초정初政11)에조
야朝野12)가 모두 부푼 기대에 이황이 아니면 성덕聖德을 성취시킬
수없을것이라고여겼고상역시그에대한사랑이남달랐는데, 이황
은 이미 늙었고 재지才智가 큰일을 담당하기에는 부족하며, 또 세상
이쇠퇴하고풍속도야박하여위아래에믿을만한사람이없어유자儒
者가 무엇을 하기에는 어렵겠다고 여겨 총록寵祿을 굳이 사양하고
기어이물러가고야말았었다. 상은그의죽음을듣고슬퍼하여제례祭
禮를 더욱 후하게 내렸으며, 장례에 모인 태학생太學生과 제자들이
수백 명에 달하였다. 이황은 겸양하는 뜻에서 감히 작자作者로자처
하지 않아 특별한 저서著書는 없었으나, 학문을 강론하고 수응酬應
한 것을 붓으로 쓰기 시작하여 성훈聖訓을 밝히고 이단異端을분별
했는데, 논리가 정연하고 명백하여 학자들이 믿고 따랐다. 매양 중국
에도학道學이 전통을 잃어 육구연陸九淵·왕수인王守仁등의 치
우친 학설들이 성행하고 있는 것을 슬프게 여겨 그 그름을 배격하기
에극언極言·갈론渴論을아끼지않았고, 우리나라도근대에화담花
潭서경덕徐敬德13)(1489~1546)의 학설이 기氣를이理로 오인한 병
통이 있었는데도 그를 전술傳述하는 학자들이 많아 이황은 그 점을
밝히는 저술도 썼다. 그가 편집한 책으로는《이학통록理學通錄》·
《주서절요朱書節要》가 있고, 그의 문집文集이 세상에 전해지는데,
세상에서는 그를 퇴계 선생退溪先生이라 한다. 논자들에 의하면, 이

황은이세상의유종儒宗으로서조광조趙光祖이후그와겨룰자가
없으니, 이황이재주나기국器局14)에있어서는조광조에미치지못하
지만 의리義理를 깊이 파고들어 정미精微한 경지까지 이른 것은 조
광조가미치지못한다고한다.


겸재謙齋정선鄭敾(1676~1759) 역시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잘 알려진 화성畵聖이라 일컬어지고 있는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화가이며 또한 문인이었다.15) 특히 겸재는 한국적 산수화인 진경
산수의 지평을 열었으며 또 그 진경산수 완성의 경지를 이루어
낸 인물이라 할 수 있다. 겸재는 당대에 일찍이 화명을 얻었으
며, 그에 관한 기록 또한 그 수가 적지 않다.16) 겸재 정선과 그의
작품에 관한 연구는 과거부터 지금까지 일일이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방대하다.17) 이러한 점들이 당대와 현재의 그와
그의 작품에 관한 위상과 평가를 잘 보여준다 할 수 있다.


이러한 평가를 받고 있는 두 거장의 철학哲學과 혼魂이 고스
란히 담겨있는 작품들이 이《퇴우이선생진적첩退尤二先生眞蹟
帖》에 전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이 진적첩眞蹟帖에 담겨있
는 작품들에 관한 기존의 많은 연구들이 있어왔다.18) 하지만, 이
진적첩에 담겨있는 작품들에 관한 부분적인 연구들만이 이루어
졌을 뿐 첩 전체의 내용과 내력來歷(Acquisition History or Collection
History), 그리고 이 진적첩의 가치 등을 모두 아우르는 연구는 이
루어지지 않았다.19) 이에 이《퇴우이선생진적첩退尤二先生眞蹟帖》

에 관한 전반적인 연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본고에서는《퇴우이선생진적첩退尤二先生眞蹟帖》자체의 연구
에 그 중심을 두어 설명을 하려 한다. 먼저 진적첩의 구성과 첩
에 담긴 모든 발문들의 내용과 내력을 살펴 이 첩의 연원淵源과
지금까지 전해지게 된 역사를 밝히고, 첩에 담긴 퇴계의 친필수
고본親筆手稿本인 <회암서절요晦庵書節要서序>의 전반적인 내용
확인을 통하여 퇴계 사상의 단면을 알아보려 한다. 또한, 이 첩
에 담긴 겸재의 네 폭 산수화와 발문, 사천 이병연의 제시를 살
피고, 각각의 작품에 담겨있는 의미와 퇴계의 수고원고와 겸재
의 산수 그리고 겸재의 산수와 여러 발문들과의 관계를 밝혀, 이
《퇴우이선생진적첩退尤二先生眞蹟帖》의 가치와 역사적 의미를 증
명하려 한다.

----------------------------------------------------------------------------

1) 국사편찬위원회國史編纂委員
會《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선조수정실록宣祖修正實錄4권,
3년(1570 경오년庚午年/명 융경
隆慶4년) 12월 1일(갑오甲午) 1번
째 기사 참조.
http://sillok.history.go.kr/ 참조.

2) 상가(喪家)에 부조로 보내는 돈
이나 물품. 또는 그런 일.
3) 장례와 제사
4) 관직을 내놓고 물러남.
5) 해당 관청.

6) 남보다 뛰어나게 영리하고 슬
기로움.
7) 성균관의 별칭.
8) 지위와 명망이 높아 세상에 널
리 알려짐을 일컫거나 지위가 높
은 벼슬자리.
9) 권력과세력을가진간사한신하.
10) 관직에 근무하다가 명예나 이
권利權에 뜻이 없어 벼슬을 내놓
고 물러나는 것으로 청렴결백하
고 고절高節한 사대부가 이를 통
해 도道를 함양하는 것을 말함.

11) 새로 등극한 임금이나 새로 도
임한 관찰사, 수령이 집무를 시작
하던 일.
12) 조정朝庭과 민간民間을 이르
는 말.
13) 국사편찬위원회國史編纂委員
會《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선조수정실록宣祖修正實錄4권,
3년(1570 경오년庚午年/명 융경
隆慶4년) 12월 1일(갑오甲午) 1번
째 기사 국역본에‘서경덕徐慶德’
이라 표기되어 있다.‘서경덕徐敬
德’으로 표기함이 옳다.

14) 기량器量.
15) 정선의 신분에 관하여 그가
도화서 화원이었다는 것을 근거
로 중인이었다는 주장도 있으나
그의 집안은 본래 사대부출신으
로 중인이라 하기 힘들다.
16) 오세창 편, 《근역서화징槿域
書畵徵》정선鄭敾편 참조.
17) 이 논저 각주 16 참조.
18) 이 첩에 담겨있는 <회암서절
요晦庵書節要서序>에 나타난 퇴
계退溪이황李滉의 사상과 겸재
謙齋정선鄭敾과 그의 산수화들
에 관한 기존의 연구들을 살펴보
면, 그 수가 방대하여 일일이 열
거하기 어렵다. 그 목록들을 하나
하나 밝히는 대신 한국미술연구
소편《미술사논총》창간호(1995
년 6월)의 별책부록인《한국미술
사논저목록》과 안동대학교, 단국
대학교, 특히 경북대학교 퇴계연
구소退溪硏究所간刊《퇴계학연
구논총 1~10권》(논총 제10권 연
보 및 자료집)<
http://www-2.
kyungpook.ac.kr/~toegye/sta
rt.htm>그리고 미술사연구회
<
http://www.hongik.ac.kr/~
misa/misahome.html>의 미술
사논문검색 등에 실린 관련자료
들을 참조하기 바란다.
19) 비록 겸재의 산수 연구에 그
중심을 두고 있지만, 기존의 연구
중《퇴우이선생진적첩退尤二先生
眞蹟帖》에 관하여 전반적으로 다
루고 있는 대표적인 연구로 최완
수,《 겸재謙齋정선鄭敾진경산수
화眞景山水畵》(범우사汎友社,
1993/2000)를 들 수 있다.

  

ⓒ 모암문고 茅岩文庫 The Moam Collection www.moamcollection.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