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_<회암서절요晦庵書節要서序>를통해본 퇴계退溪 이황李滉(1501~1570)의사상(2)
"회암서절요晦庵書節要서序, 晦菴朱夫子는 亞聖의 자질로 태어
나河洛의계통을이었는데도는우뚝하고덕은높으며, 사업은넓어
서 공로가 높다. 또 그가 經傳의지취(뜻)를 발휘하여 천하 후세를 가
르친 것은 실로 귀신에게 물어도 의심이 없고 백세에 성인을 기다려
도의혹됨이없을것이다. 부자께서별세한뒤에두왕씨王氏와여씨
余氏가 부자께서 평소에 저술한 시문들을 모아 한 책을 만들고 주자
대전朱子大全이라고 이름붙이니 총 약간 권이 되었다. 그 중에 공경
대부와 문인 및 아는 친구들과 왕복한 서찰이 자그마치 48권에 이르
렀다. 그러나이책은우리나라에유행하는것이아주없거나겨우조
금있었을뿐이므로얻어본선비는적었다.
嘉靖계묘년(1543)에우리中宗大王께서 교서관에 명하여 인쇄해서
반포하게 하였다. 이에 신 황滉은 비로소 이런 책이 있는 줄을 알고
구하여 얻었으나 아직도 그것이 어떤 종류의 책인 줄은 알지 못하였
다. 잇따라병때문에관직을버리고계상溪上으로돌아와날마다문
을닫고조용히거처하며읽어보았다. 이로부터점점그말에맛이있
음과그뜻이무궁한것을깨달았는데, 그서찰에있어서는더욱느끼
는 바가 있었다. 대체로 그 책 전체를 두고 논한다면 지구가 넓고 바
다가 깊은 것과 같이 없는 것이 없으나, 구해 보아도 그 요점을 알기
어렵다. 그러나서찰에있어서는각기사람들의재품材稟39)의고하와
학문의 얕고 깊음에 따라 증세를 살펴 약을 쓰며 사물에 따라 저울로
다는 듯이 알맞게 하였다. 혹은 억제시키거나 앙양시키며 혹은 인도
하거나 구원하며 또는 격려하여 진취시키기도 하고 배척하여 경계시
키기도 하였다. 그리하여 심술의 은미한 사이에 작은 惡이라도 용납
될수없게하였고, 의리를캐내고찾을때에는조그마한차이점도먼
저비춰주었다. 그리하여그규모가광대하고심법이엄밀하며, 마치
위험한 낭떠러지에 선 듯, 여린 살얼음을 밟듯 조심하면서 혹시라도
쉬는때가없게하였다. 악을징계하여막고허물고치기를미치지못
하는 듯이 두려워하며, 강건하고 독실하여 그 빛이 날마다 덕을 새롭
게하였다. 그리고힘쓰고따르면서그치지않는것은남과자신이간
격이없어야하는것이므로, 그가남에게고해주면능히남으로하여
금감동되어흥기토록하였다.
당시 문하에 있던 선비들만 그랬을 뿐 아니라 비록 백세의 먼 훗일이
라도 그 가르침을 듣는 자는, 귀에 대고 말하며 직접 대해 명하는 것
과 다름이 없으니, 아! 지극하도다. 그런데 돌아보면 책의 규모가 광
대하여 다 살펴보기가 쉽지 않고 등제된 제자들의 문답에도 혹 득실
이 있음을 면치 못하였다. 이에 나 황의 어리석음으로 스스로를 헤아
리지못하고, 그중에서더욱학문에관계되고쓰임에절실한것을찾
아 표시하였는데 편篇이나 장章에 구애되지 않고 오직 요점을 얻기
에 힘썼다. 마침내 여러 벗 중에서 글씨를 잘 쓰는 자와 자질들에게
부탁하여 책을 나누어 필사하게 하였다. 이를 마치니 모두 14권 7책
이되었는데본래의책에비교하여감해진것이거의3분의2나되었
으니외람되고망령된죄는피할수가없을것이다.
그러나 일찍이 송학사집宋學士集을 보니 그 기록에“노재魯齋40) 왕
선생王先生이 그가 뽑은 주자의 글을 가지고 북산北山하선생河先
生에게교정을구하였다”고하였다. 그렇다면옛사람이벌써이일을
했던것이며, 그뽑고교정한것이정밀하여전해질만한것인데도당
시의송공도얻어볼수없음을오히려한탄하였다. 더구나지금이나
라에서 수백 년 뒤에 태어났는데도 어찌 그것을 구해보고좀더간략
하게해서공부하도록하지않을수있겠는가? 혹자가말하기를“聖經
과賢傳은어느것인들실학이아니겠는가? 또한지금여러집주集註
의 학설로서 집집마다 전하고 사람마다 읽는 것이 모두 지극한 가르
침이다. 그런데 그대 홀로 부자의 서찰에만 알뜰하니 어찌 그 숭상하
는바가한쪽에치우치고넓지못한가?”하였다. 나는대답하였다. 자
네가 말이 그럴듯하나 그렇지 않다. 대체로 사람이 학문을 함에는 단
서를발견하고흥기되는곳이있어야만 이로인해진보될수 있는것
이다. 또한 천하의 영재가 적지 않으며, 성현의 글을 읽고 부자의 학
설을 외우기에 힘쓰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마침내 이러한 학문
에힘쓰는자가없으니이는다름이아니라그단서를발견하여그마
음을 진작시키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 이 서찰에 있는 말은 그
당시의 사우들 사이에 좋은 비결을 강론하여 밝히고 공부에 힘쓸 것
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그러니 저들과 같이 범연하게 논한 것과는 다
르고 어느 것이나 사람의 뜻을 발견하고 사람의 마음을 진작시키지
않는것이없다.
옛날 성인의 가르침에 예禮·악樂·시詩·서書가 모두 있다. 그런
데정자程子41)와주자는이를칭송하고기술함에있어마침내논어論
語를가장학문에절실한것으로삼았으니그뜻은역시이때문이었
다. 아! 논어 한가지의 한 책으로도 도道에 들어갈 수가 있다. 지금
사람들은 여기에 있어 학설을 외우고 (입으로만) 떠들기에 힘쓸 뿐 도
道(를)구하기에 마음을 쓰지 않으니 이것은 이익의 꾀임에 빠진 때문
이다. 그런데이글에는논어의뜻은있지만꾀임에빠지는해독은없
다. 그렇다면앞으로배우는자로하여금느끼고흥기되게하여, 참으
로 알고 실천하도록 하는 데는 이 글을 버리고 어떻게 할 것인가? 부
자의말씀에이르기를“학자가진보되지못하는것은들어갈곳이없
어 그 맛을 즐길만한 것임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들
어갈 곳이 없다는 때문이다. 지금 이 글을 읽는 자로 하여금 진실로
마음을비우고뜻을겸손하게하며번거로움을참고깨달으려고하지
않기때문이다. 지금이글을읽는자로하여금진실로마음을비우고
뜻을 겸손하게 하며 번거로움을 견디고 깨닫게 하기를, 부자의 가르
침처럼 한다면 자연히 들어갈 곳을 알게 될 것이다. 그 들어갈 곳을
얻게된뒤이면그맛의즐길만한것임을아는것이맛난음식이입을
기쁘게 하는 것과 같을 뿐만 아닐 것이다. 또 이른바 규모를 크게 하
고 심법을 엄하게 하는 것에도 거의 힘쓸 수 있을 것이다. 이로 말미
암아 널리 통하여 곧바로 올라간다면 이락伊洛42)에 소급되고 수사洙
泗43)에 달하게 되어 어디로 가나 불가함이 없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아까말한성경과현전이사실은모두우리의학문인것이다. 어찌이
한책만을치우치게숭상한다할수있겠는가? 황은나이늙었고병들
어 궁벽한 산중에 있으면서 전에 배우지 못한 것을 슬퍼하고 성인의
여운을 깨닫기 어려움을 개탄하였다. 그런데 구구하게 단서를 발견하
였던것은실로이글에힘입었음이있었다. 그래서감히남이지목하
는데도숨기지못하고즐거이동지들에게고하며또한무궁한후세에
공론을기다린다.
- 가정嘉靖무오년戊午年(1558) 4월
(후학진성이황) 삼가씀44)"
이상에서 알 수 있듯이《퇴우이선생진적첩退尤二先生眞蹟帖》은
고려말高麗末성리학이 처음 유입되었던 때를 시작으로 주자학
이라는 조선성리학을 집대성하고 학문적으로 완성시킨 퇴계 이
황 선생의 오롯한 철학哲學과 혼魂이 담겨있는 그 무엇과도 바
꿀 수 없는 우리의 소중한 정신적 유산이라 할 수 있다.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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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재주와 품성.
40) 宋나라 王栢의 호. 자는 회지會
之이며 저서에 독역기讀易記등 다
수가 있다. 宋史438권.
41) 중국 송나라의 유학자 정호程
顥와 정이程형제를 높여 이르
는 말.
42) 두 선생 정자程子가 이수伊水
와 낙수 洛水에서 학문을 강론하
였다. 낙수는 정자의 고향으로 알
려져 있다.
43) 산동성山東省에 있는 수수洙
水와 사수泗水를 일컫는 것으로
이곳에서 공자가 도道를 강론하
였다 전한다.
44) 퇴계학연구원 편《국역 주자
서절요朱子書節要1》(심산문화
사, 2001), p. 1~6; pp. 一~二
참조. 김시황, 윤무학 편, 《퇴계
학논총 제 10 권》‘주자서절요서’
(장순범 역)
위 글을 참조하였고《퇴계학논총
제 10 권》내 오자를 바로잡고(위
논문 각주 (5)‘ 落水’를‘洛水’로)
글의 부분을 수정하여 실었다. 이
원문과 달리 제자들에 의하여 선
생사후에 간행된《주자서절요朱子
書節要서序》에는“가정嘉靖무오
년戊午年(1558년) 4월에‘후학 진
성 이황’삼가 씀”이라 씌어있다.
45) 두 웨이밍(杜維明, 하버드대
학교 동양철학과 교수), “주자의
이철학에 대한 퇴계의 독창적 해
석”《도산서원陶山書院》(한길사,
2001), pp. 178~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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