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_겸재謙齋정선鄭敾(1676~1759)의 기록화와 발문_1. 기록화_(2) <무봉산중舞鳳山中>
<무봉산중舞鳳山中>(도 11)은 겸재謙齋71세시 숭정병인년崇禎
丙寅年(1746)에《퇴우이선생진적첩退尤二先生眞蹟帖》에 그려 넣으
신 네 폭의 진경에 바탕을 둔 산수화 중 한 폭으로, 진적첩眞蹟帖
총 16면(앞뒤 표지 포함) 중 10면에 그려져 있는 작품이다.
이 그림은 앞에서 설명한 바대로 퇴계의 친필 <회암서절요 서>
수고본手稿本을 자신의 장인 정랑正郞홍유형洪有炯에게 전하여
받은 겸재의 외조부 박자진朴自振(1625~1694)은 이 퇴계의 친필
<회암서절요 서> 수고본手稿本을 가지고 당대의 대학자인 우암
尤庵송시열宋時烈(1607~1689)을 두 번 찾아가 뵙고 그에게 숭정
갑인년崇禎甲寅年(1674)과 壬戌年(1683) 9년의 시차를 두고 발문을
받게 된다. 당시 우암은 효종이 급서한 후 자의대비慈懿大妃의
복상服喪문제를 둘러싼 제1차 예송禮訟승리 후 다시 1674년 효
종비 인선왕후仁宣王后가 죽자 자의대비의 복상문제가 제기되어
제2차 예송이 일어나게 되었는데 대공설大功說61)을 주장했으나
기년설을 내세운 남인에게 패배, 실각한 후 잠시 수원 무봉산舞
鳳山에 머물고 계셨다.62) <무봉산중舞鳳山中>도는 이러한 당시의
상황과 이 묵보의 내력을 그림으로 잘 보여주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그림의 상단에 무봉산 봉우리가 우뚝 솟아있고 봉우리 좌우로
나지막한 여러 산줄기들이 뻗어있다. 오른쪽 말단의 산줄기는
먹의 농담에 변화를 주어 원근을 표시하고 있고, 중간의 우암이
거쳐했을 기와집과 봉우리 사이를 운무雲霧로 여백처리 하여 신
비감을 높이고 극적느낌을 준다. 그림의 좌측하단에 우암 선생
과 겸재 외조부 박자진이 만나고 있는 초옥정자가 위치해 있는
데, 우암의 기와집과 이 정자 사이를 또다시 곡천谷川이 갈라놓
고 있으니 정말 겸재 그림구도와 구성의 경지를 짐작할 수 있다.
화면의 오른쪽 상단부분에‘무봉산중舞鳳山中’이라 관서 되어있
고‘정선’이라는 도인이 찍혀 있다.
《퇴우이선생진적첩退尤二先生眞蹟帖》내에 담겨있는 겸재 정선
의 4폭 산수와 우암의 발문을 비롯하여 첩 내의 모든 발문들을
살펴보면 흥미로운 점이 발견된다. 사로(사천) 이병연의 제시를
제외한 모든 부분에서 작가 자신의 아호를 적지 않았다.63) 이는
퇴계와 우암 두 대선생의 친필묵적이 합장되어 있기 때문에 그
존경의 의미로 아호 등을 적지 않고 자신의 본과 이름자를 적고
뒤에‘근서’혹은‘경제’라 하였다. 이렇듯 우리의 선조들은 예
禮를 배우고 익히고 그 예를 실행해 옮겼다는 것을 보여준다.
두 번에 걸친 우암의 발문을 다시 살펴보자.
이 절요서와 목록을 영인본으로만 보아오다 지금 박진사 자진 씨가
퇴계선생절요서 초본진적을 내가 머물고 있는 무봉산 중으로 가지고
와보이니, 내소말대죄하고있는중에뜻밖에선생의초본을보게되
니 만져보고 또 조심스럽게 만져보고 보고 또 보고 하루해가 다 기울
었는데도 만지고 또 만져 종이가 부풀어 종이 털이 일어나도록 보아
도차마손에서놓지못하네. 참좋다. 내무봉에오기를잘했네. 박진
사 말을 들어보니 박진사의 외숙인 정랑 벼슬을 한 홍유형 씨로부터
(이 진적을) 얻었으며, 홍정랑 유형 씨는 퇴도(퇴계)선생의 외현손이 된
다한다.
- 숭정알봉64)섭제격65)(갑인1674년) 중추일
후학은진송시열경서
구년 뒤 임술(1683) 지월 7일 이곳 무봉산 중에서 다시 또 보았으나
좀 먹은 곳이 없이 깨끗하니 박진사 보장(보관)의 지극 정성스러움에
놀랐도다.
- 시열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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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9개월 동안 상복을 입는 것.
62) 최완수, 《겸재謙齋정선鄭敾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범우사汎
友社, 1993/2000), p. 240.
63) 이병연의 제시는 퇴계나 우암
두 대선생의 묵적에 관련된 것이
아니라 지기인 겸재의 그림들과
합하여진 것이기에 아호인‘사로’
를 적은 것으로 생각된다.
64) 알봉閼逢, 고갑자 십간十干의
첫째 갑甲.
65) 섭제격攝提格, 고갑자 십간十
干중 인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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