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심보감明心寶鑑은 명나라의 범입본范立本이 쓴, 어린이들을 위하여 각종 고전에서 가르칠 때 쓰이기 위해 문구들을 발췌하여 만든 책이다. 오랜시간 고려시대 충렬왕 때의 문신인 추적秋適이 1305년에 지은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초학 입문용 교재로 손꼽히는 『명심보감』은 지금까지도 우리 민족과 삶의 호흡을 같이하는 고전이다. 단순히 쉬운 문장들로 구성되어 한문 학습을 돕는 역할만 했다면 그 위상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간결한 문장 안에 담긴 선인들의 보배로운 말과 글은 인격 수양을 돕고, 나아가 인생의 잠언으로 두고두고 숙독되었다. 여러 세대에 걸쳐 축적된 현인들의 지혜는 유교·불교·도교 등의 내용을 아우르고 있어 전통적인 동양 사상의 진면목을 잘 보여준다. 어느 한편의 사상에 치우치지 않고 인간의 보편적인 윤리도덕을 강조하고, 인간 본연의 착한 심성을 강조하며, 지족知足과 겸양의 덕성을 가져야 한다는 명언은 경세經世를 위한 수양서이자 제세에 필요한 교훈서가 되기에 충분하다.
19편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유불선의 복합된 사상을 망라하여 만든 책이다. 조선시대에 서당에서 어린이들을 위한 교과서로 자신을 수양하고 반성하고 양심을 기르는 인격수양의 목적으로 가르쳤다. 공자를 비롯한 성현의 말씀과 소학 등의 책에서 발췌한 내용으로 이루어져있다. 이책은 당시 고려와 조선뿐만 아니라 중국과 동아시아 일대의 국가에 널리 알려졌다. 현재 전하는 것은 고종 6년 (1869) 추세문이 출판한 인흥재사본이 일반적으로 쓰이고 있다.
오랫동안 한국에서 고려 충렬왕 때의 명신名臣 추척秋適의 저작으로 알려졌던 것과 달리, 『명심보감』은 명나라 학자인 범입본范立本의 저작이다. 이는 본서에서 저본으로 삼은 청주본이 소개되면서 밝혀진 사실이다. 청주본은 한국 최초의 판각본이자 중국의 원본을 가장 충실하게 옮긴 판본으로 보인다. 현존하는 수십 종의 판본은 판각을 거듭하면서 시대와 상황에 맞게 그 모습을 달리 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실제로 유교 이념이 중시되던 시기에 간행된 초략본에는 불교 관련 내용이 거의 누락되어 있다.
국내에만도 수십 종에 이르는 판본이 전하는 『명심보감』은 1393년에 편찬된 이래 각국에 널리 소개되었다. 베트남이나 일본 등 동아시아는 물론이고, 네덜란드어나 독일어로 번역되어 서구에까지 유입되었다. 동양 문헌 최초로 서양어로 번역된 것이다. 선교를 위해, 중국인의 사상을 이해하기 위해 『명심보감』에 관심을 가졌던 서양인 선교사는 중국인에게 성서와 같은 존재라고 극찬하기도 했다.
[위키백과사전 참조]
이제 『명심보감明心寶鑑』「부행편婦行篇」의 행간을 하나 하나 음미하여 보자.
"『익지서』에 이르기를, "여자는 네 가지 덕의 기림이 있으니,
"부덕이라 함은 절개가 곧으며, 분수를 지키며 몸 가짐을 고르게 하고 한결같이 얌전하게 행하고 행동을 조심하며, 행실을 범도에 맞게 하는 것이니 이것이 부덕이 되는 것이요, 부용이라 함은 먼지나 때를 깨끗이 빨아 옷차림을 정결하게 하며, 목욕을 제때에 하여 몸에 더러움이 없게 하는 것이니 이것이 부용이 되는 것이요, 부언이라 함은 말을 가려서 하며, 예의에 어긋나는 말은 하지 않고 꼭 해야 할 때에 말해서 사람들이 그 말을 싫어하지 않는 것이니 이것이 부언이 되는 것이요, 부공이라 함은 길쌈을 부지런히 하며 술을 빚어 내기를 좋아 하지 않고 좋은 맛을 갖추어서 손님을 접대하는 것이니 이것이 부공이 된다."
宋弘傳
所用群臣 如宋弘等 皆重厚正直
上姉湖陽公主 嘗寡居여 意在弘
弘이 入見 主坐屛後 上曰 諺言 富易交 貴易妻 人情乎
弘曰 貧賤之交 不可忘 糟糠之妻 不下堂
上 顧主曰 事不諧
(광무제가) 기용起用한 여러 신하들 중에 송홍 등과 같은 이들은 모두 중후하고 정직하였다.
임금의 누님인 호양공주가 일찍이 과부로 지내고 있을 때 그 뜻이 송홍에게 있었다.
송홍이 입궐하여 임금을 뵈었을 때 공주가 병풍 뒤에 앉아 있었는데, 임금이 “속담에 ‘부유해지면 친구도 바꿀 수 있고, 귀하게 되면 아내도 바꿀 수 있다’ 했는데 (그것이) 인지상정이다” 하였다.
송홍이 "빈천할 때 사귄 친구는 잊어서는 안 되고, 어려움을 함께한 아내는 대청에서 내려서는 안 된다 하였습니다" 하였다.
(그러자) 임금이 공주를 돌아보며 “일이 뜻대로 안 되었구나” 하였다.
부족하지만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남녀를 가리지 않고 그 몸과 마음의 가짐은 전통적으로 굉장히 중요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떻한가? 글쎄, 이러한 것도 세계화인가? 또 이렇게 말하는 필자가 시대에 뒤떨어 진 구태의연한 생각에 빠져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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